아니나 다를까.

요즘 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 했더니 기어이 북한이 또한번
불장난을 저질렀다.

황장엽씨의 전쟁경고가 있은지 불과 엿새만에 북한군이 비무장지대에서
국지 도발을 자행, 온 국민에게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북한이 6.25전쟁 이후 지금까지 정전협정을 위반한 것만해도 43만여건에
달하고 비무장지대에서의 총격도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이번 경우는 치밀한
사전각본에 따라 박격포와 무반동총까지 동원, 아군을 공격했다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충격적이다.

우리가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번 도발이 황장엽씨가
망명 기자회견에서 증언한 북한의 전쟁시나리오의 연장선상에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황씨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은 특수부대원을 국군으로 위장, 남한이 북침한
것처럼 꾸며 그에 대한 응징을 한다는 식으로 대내외에 선전하며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한다.

이번의 경우만 해도 자신들이 먼저 군사분계선을 침범, 우리측의 경고
사격을 유도하고도 마치 우리측이 먼저 도발한 것처럼 역선전하는 것을 보면
황씨가 밝힌 시나리오와 수법이 비슷하다.

때문에 일과성이라 하여 경계를 늦춰서는 안된다.

경제가 파탄나고 외교적으로 사면초가에 몰려 북한이 전면전을 일으킬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지만 적어도 국지도발을 계속할
가능성은 어느때보다 높다고 봐야 한다.

북한은 언제라도 대남도발을 자행할 의도가 있음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번 확인된 이상 우리의 대비태세도 그에 못지않게 확고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군사적 안보태세의 강화가 시급하다.

이와 관련해 최근 전쟁도발대비 종합점검단 설치문제로 국방부와 총리실
간에 혼선이 빚어지고 이로 인해 안보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조장한
것은 유감이다.

아무리 부처이기주의가 고질병이라고는 하지만 국가안보에 관한한 관계
부처간의 충분한 협의를 통한 범정부적 대책이 긴요하다.

외교적으로는 먼저 이번 무력도발의 전모와 노림수를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이를 정전위원회와 국제사회에 정확히 알려야 한다.

이번 도발은 황장엽씨의 증언에 대한 보복일 수도 있고 4자회담에서의
입지강화를 위한 포석일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레이니 전 주한 미국대사,
샘 넌 전 미 상원군사위원장 등 클린턴대통령 특사의 방북을 앞두고
휴전선에 긴장을 고조시켜 북-미 고위급 군사채널을 개설하기 위한 외교적
압력용 카드일 가능성이 높다.

이같은 북한의 의도를 분쇄하기 위해 우리는 한-미 공조체제강화에 외교적
역량을 결집해야 할 때라고 본다.

끝으로 해이된 우리 국민의 안보의식을 추스리는 일이 시급하다.

지금처럼 만사를 젖혀놓고 정권쟁취를 위한 이전투구에만 모든 관심을
쏟다보면 북한의 오판을 자초하게 될지도 모른다.

전쟁을 막기위한 지름길은 뭐니뭐니 해도 우리 내부의 결속과 경제력강화에
있음을 강조해둔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