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통화위기 소식이 외신을 타고 들어왔을때 재정경제원등 경제부처의
반응은 한마디로 "관심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올해초 문제가 됐던 일이라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한국기업과 금융기관들이 피해를 입게 됐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도 "제2의
멕시코사태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고작이었다.

국내 금융기관의 투자규모에 대해선 아예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나 불과 하루 이틀이 지나지 않아 태국의 통화위기는 동남아시아
전체로 파급되기 시작했다.

마치 태풍이 북상하듯 필리핀 인도네시아를 휩쓸고 싱가포르와 홍콩에
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기에 이르렀다.

심지어는 다음 차례가 한국과 대만이라는 외신보도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제2의 멕시코 사태로 발전할 것이라는 분석도 전해지고 있다.

물론 이런 분석이나 전망이 모두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태국의 현지 표정과 그렇게 된 사정을 곰곰 따져보면 남의 일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수 없다.

"휘발유값이 며칠새 5%나 올랐다.

콜라와 사이다가격은 20%나 뛰었다.

상인들은 컴퓨터나 텔레비전 같은 공산품의 판매를 꺼리고 있다.

곧 가격이 오른다고 한다.

전기값도 10%이상 인상한다는 소문이고 노동계는 대폭적인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달초부터 바트화 폭락으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태국의 경제사정이다.

게다가 올 경제성장률은 제로, 물가상승률은 10%를 넘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미 선진국 금융기관들은 태국의 경제위기를 감지하고 돈바구니를
싸들고 떠났다.

이른바 핫머니들이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태국 재무장관이 일본에 자금지원을 요청하고 나섰으나 신용도는
이미 땅에 떨어졌다.

지난 몇해동안 이머징 마켓으로 한껏 주가를 올리던 태국이 왜 갑자기
이렇게 됐을까.

직접적인 원인은 물론 바트화의 폭락이다.

지난 7월2일 환율제도를 변동환율제도로 바꾼뒤 달러당 26바트선이던
환율이 30바트까지 급등했다.

15%이상의 환율변동이다.

원화환율로 치면 달러당 9백원에서 며칠새 1천원대로 뛴 셈이다.

이러다보니 투기성 핫머니의 공격대상이 된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수출부진이다.

태국은 지난 95년까지 10여년간 연평균 8% 이상의 고도성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95년부터 수출부진으로 경기침체기에 들어가면서 고도성장기에
들어왔던 자금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불안정한 정치상황과 공직자들의 부패도 한몫 거들었다.

얼마전엔 태국의 대표적인 가전회사인 알파텍이 파산했다.

이를테면 거품이 급격히 빠지면서 혼란이 야기됐고 이를 투기성 핫머니가
부채질한 것이다.

최근 한국의 수출부진과 기아그룹을 비롯한 부도유예기업의 잇단 등장을
태국사태에 빗댈 생각은 없다.

외견상의 유사성만을 놓고 한국도 태국과 같은 길을 갈것이라고 섣부른
판단을 할수는 더욱 없다.

경제구조나 경쟁력면에서 너무도 상이한 점이 많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꼭 짚어야할 대목은 바로 우리의 안이한
대응자세다.

국내 금융기관들이 40억달러 이상 투자하고 있고 제조업체들도 다수
진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중 일부는 조업중단을 검토하고 장기적으로는 철수까지 생각하고 있다.

금융기관들도 마찬가지다.

국내 금융기관들은 선진국 자금이 이미 떠나버린 태국으로 뒤늦게
따라갔다.

종금사의 경우 국내에서 영업이 어렵게 되자 대거 태국으로 진출했다고
한다.

결국 부실채권을 고스란히 떠안은 셈이 된것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 금융기관의 실력으로는 선진국이 버려둔
곳밖에 갈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동안 정책당국과 금융기관들은 지난 80년말부터 90년대까지 이어졌던
미국과 일본의 금융기관 도산사태와 멕시코 외환위기 등을 목격했다.

실제로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까지는 별로 교훈을 얻지 못한 듯하다.

그렇다면 정치만 후진적이라고 비웃을 일만도 아니다.

이번 동남아 통화위기는 마지막 교훈이 되기를 간곡히 바랄 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