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락 <산업기술진흥협 부회장>

독일 통일에 대해 얘기할 때면, 통독시 독일의 상황과 우리와는 인구,
경제규모, 1인당 GDP, 수출 및 수입 비중, 국토 면적 등 여러가지 여건상
서로 상이하기 때문에 통독과정에 대한 참고자체를 부정적으로 시사하는
것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독일이 통일과정에서 산업및 과학기술분야의 구조조정작업을 어떻게
했는지를 보면 여러가지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먼저 단시일 내에 경제적으로 균일한 수준의 통일을 달성하기 위하여
전담기관을 설치하여 이에 대응하였다는 점이다.

구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경제시스템을 바꾼 동구의 여러 나라와는 달리
동독의 경우는 체계를 개혁하는 한편, 서독이라는 파트너와 더불어 서독의
경제 수준으로 통합하여야만 했다.

독일은 동독 경제를 빠른 시일내에 서독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대명제를 달성하기 위해 구체적인 작업에 돌입하게 된다.

90년 10월3일 통일이 공식 선포되기 직전인 1990년 7월1일, 서독의
마르크를 통일독일의 통화로 채택하는 것을 포함하여 동독의 경제시스템을
서독화한다는 것을 골자로 규정한 통일조약을 체결하면서 곧바로 전문적인
동독경제전환전담기관인 민영화전담신화공사(Treuhandanstalt)를 설립하여
동독 경제의 서독화 작업에 착수했다.

민영화전담신화공사는 많은 동독 기업이 경쟁력을 갖출수 있게 하기
위해서 생존할수 있는 기회를 가능한 한 많이 제공하고 동시에 많은 고용을
보장하고 창출해야 한다는 원칙을 수립하여 활동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성이 없는 기업을 무조건살리자는 방식을 채택한 것은
아니었다.

서독의 경영인 투자가 은행가 법률가 감사역 및 콘설턴트들로 민영화팀을
구성한 동 공사는 빠른 시간 안에 진정으로 경쟁력을 갖출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는 재정적 지원뿐만 아니라 량과 관리 능력을 갖고 있는 마케팅 재정
일반관리분야의 경영자 및 민간투자가들을 개입시키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하였고 생존 가능성이 없는 기업들(동독 기업의 25%내지는 30%)은
폐쇄조치했다.

다른 한편으로 투자가를 선정함에 있어서 관련 산업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추고 있는지 경영능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시설을 현대화할 의지가 있는지
그리고 일정정도의 고용을 보장할수 있는지의 기준아래 투자가를 선별하였다.

결과적으로 신탁공사는 1990년부터 1994년까지 4년간 1만5천개의 기업을
민영화하는데 성공하였고 약 4천개의 기업을 분단 이전의 원주인에게
돌려주었다(아직 미해결되어 소송에 걸려 있는 경우도 다수).

이들 기업 중 특히 바이엘, BASF, DOW나 한국의 삼성 등서독이나 외국의
대기업에 매각한 기업의 경우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렇다면 과학기술분야에서의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과학기술분야 통합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던 독일은 이미 언급한
바 있는 통일조약 속에서 과학기술분야 구조조정을 책임질 과학위원회
(German Science Council)의 설립을 규정하고 있다.

이 기관은 1990년 여름에서 1991년 가을까지 약 1년 동안 존속했는데
국내외 과학자 약 2백명으로 10개의 실무단을 구성하여 주로 동독지역의
과학아카데미 소속 연구소(연구개발활동의 대부분이 70개의 과학아카데미
소속 연구소의 2만4천명의 연구원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었고 대학이나
기업연구소는 거의 이에 의존하고 있었음)를 평가하고 구조를 조정하는
임무를 맡았다.

동독지역의 연구개발활동의 특징으로는 서독과는 달리 중앙집권적
통제하에 놓여 있었고, 서방세계와는 철저히 단절된 폐쇄적 체제를 갖고
있었다.

민간연구는 기본적으로 존재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과학위원회는 동독지역에서 무호적으로 평가된 연구팀들을 서독의 다양한
연구체제속에 통합시키고, 동시에 과잉이던 연구원의 수를 감축시켰으며,
대학혁신프로그램을 통 새 과학인력을 대학에 통합시키는 작업을 전개하였다.

그러니까, 이 과학위원회는 비효율적 연구개발기관으로 동독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과학아카데미 소속 연구소를 제거하여 그 인력을
국가연구센터, Blue List 연구소(국가적 중요성을 갖는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소로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50:50의 예산을 지원), Max-Planck
연구협회(독일 내 기초연구전담기관), Fraunhofer 연구협회(독일의
국책응용연구기관으로 우리 나라의 KIST와 생산기술연구원(중소기업기술지원)
을 통합시킨 것과 같은 기관), 대학 및 산업연구소에 통합시키는 구조조정은
단행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구조조정과정에서, 1991년에 전체 80,000명이었던 연구원수가
22,000명으로 줄어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114개의 새로운 연구소 및 기존연구소의 분소가
설립되었으며, 특히, 3개의 국가연구센터가 신설되었고, 기존 국가연구센터의
8개 분소가 설립되었으며, 37개의 Blue List 연구소가 창립되었고, 19개의
Fraunhofer 연구협회 소속 연구소와 23개의 Max Planck 연구협회 소속
연구소가 동독지역에 신설되었다.

이러한 비대학연구소는 이 기간동안 15,000명의 인력을 채용하였다.

과학분야의 재편성은 독일통일과정 중 가장 성공적인 분야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교육연구성은 고등교육기관혁신프로그램을 시행함으로써,
구동독지역의 대학들로 하여금 서독지역 대학에 필적할 만한 발전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