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정부가 소신을 갖고 추진하고 있는 한국은행 개편안(이하 정부안)은
원래 취지와는 반대로 중앙은행의 독립과 경제의 자율화라는 세계적 추세와
사회발전 방향과 역행하는 것이다.

이번 정부안의 핵심은 금융통화위원회를 한국은행으로부터 분리시키고
한은은 그 하부의 단순집행기구로 격하시키며, 현재 한은 부서인
은행감독원과 재경원 산하기관으로 있는 증권감독원과 보험감독원을 합쳐
금융감독원을 만들어 총리실 산하에 둔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안은 금통위가 정부기구가 아닌 것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상
정부의 한 부서가 되어 있다.

현재 9명의 금통위원중 의장인 재경원장관만이 공무원이고 나머지 8인은
모두 민간인인데 비해 정부안은 금통위 의장을 포함, 7명의 금통위원을
모두 공무원들로 구성하도록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물가안정목표를 지키지
못할 경우에는 금통위 의장과 금통위원을 임기전이라도 해임할수 있도록
규정함으로써 금통위원들의 신분을 현행보다 훨씬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현재는 재경원장관이 금통위 의장을 겸임하게 되어 있는데 반해 이번
정부안에서는 재경원장관이 아닌 다른 사람이 한은총재를 겸임하는
금통위의장을 맡으며 금통위를 재경원과 분리된 정부 산하의 독립된 기구로
만드는 것을 근거로 정부는 이번 정부안이 중앙은행의 재경원으로부터의
독립을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중앙은행 독립의 진정한 의미는 재경원이
아니라 정치권력, 구체적으로는 대통령이나 총리 및 그 측근 세력으로부터의
독립이다.

중앙은행의 권한을 남용하고 싶어하는 것은 최고권력자 내지 그
주변인물이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보사건과 김현철사건에서도 여실히 증명된 바 있다.

정부안이 금통위를 재경원으로부터 독립시키고 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재경원장관과 금통위 의장의 월1회 이상 정례협의, 금통위에 대한
재경원의 의안 제의권과 재의요구권, 물가목표 미이행시 금통위 의장과
위원에 대한 재경원장관의 해임 요구권, 한은감사에 대한 임명 추천권,
한은의 경비성 예산승인권 등 정부안은 재경원의 금통위에 대한 간섭수단을
여러가지로 마련해 놓고 있다.

우리나라의 그 어느 정부기관에도 몸통과 머리가 분리된 기형적인 모습이
없고 세계에서도 이런 모양의 중앙은행은 연방국가로서의 특수한 금융역사를
갖고 있는 미국밖에 없다.

이에 대해 정부는 통화신용정책은 정부조직법상 정부의 고유권한인 반면
한국은행은 정부기관이 아니므로 금통위를 한은으로부터 분리시키고
금통위의 의장과 위원들을 공무원으로 만드는 것이 부득이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1952년에 한은법이 제정될 때 정부의 고유업무인 금융통화에 관한
업무를 특수법인인 한국은행에 위임하는 것이 정부조직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법무부가 이미 공식적으로 내린 바 있다.

화폐발행권은 원래 정부의 권한이지만 이것을 정부가 직접 행사하면
통화남발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이 업무를 정부로부터 독립된 중앙은행에
위임하여 통화발행을 엄격히 관리하도록 한다는 것은 수백년간의 경험을
통하여 체득된 현대국가의 지혜이다.

만일 강부총리와 김수석이 자신들의 말대로 진정으로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관련법을 개정하고
싶어하는데 정부조직법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정부조직법을 개정하여
한은을 독립시키자고 주장하여야 할 것이다.

개혁을 한다는 마당에 정부조직법이라고 못 바꿀 이유가 없지 않은가.

세 금융감독기구를 묶어 금융감독원을 새로 만든다는 것도 신중히 검토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이는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개혁의 기본방향과도 상치될 뿐 아니라
관치금융을 더욱 강화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다.

과거에는 간접적으로 감독하던 은행을 이젠 정부가 직접 감독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신설되는 금융감독원이 재경원이 아니라 총리실 산하라는 것은 관치금융
완화와 아무 상관없다.

정부의 직속 산하기관인 점에서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은행감독원을 한은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금융기관들이 건전경영으로 하고 있는가를 항시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금융기관들에 거액을 빌려주며 금융위기를 최종적으로 막아야 하는
중앙은행으로서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안은 매우 제한적인 감독기능만 한국은행에 인정하고
항시적이고 일상적인 감독권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중앙은행의 통화신용정책 대상을 현행보다 대폭 축소하는 것도 정부안의
방향 착오이다.

정부안은 금통위의 권한을 시장참여자로서의 기능으로 국한시키고
비은행금융권및 외환관련 업무를 금통위 업무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자금의 대외거래와 비은행금융기관의 예금업무가 엄청 커진 현재의
개방경제에서 중앙은행에 이처럼 제한된 영역만으로 통화량을 적절히
관리하여 물가안정을 책임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마치 땅만 아니라 바다와
하늘로도 침입해 오는 외적을 육군만으로 막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