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녀는 더욱 더 단호하게 말한다.

"나는 별장에서 당신과 차를 마시고 오고 싶어. 여왕님 죄송합니다.
명령을 어겨서요"

그는 지극히 부드럽게 말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분노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영신이 애원하는 투로 말한다.

"정말 나는 별장에 가고 싶지 않아요. 약속도 있구"

"약속시간까지 꼭 바래다 줄게"

그는 천연스레 말한다.

영신도 더이상 애원하지 않는다.

그녀는 단단히 핸드폰을 거머쥐고 침착하게 앉아 있다.

강물이 햇빛에 반짝이는 것이 무척 아름다웠지만 그녀는 지금 그와 같이
별장으로 가고 싶지 않다.

여섯시에 지코치를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 때문에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다.

그리고 지영웅의 아름답고 귀여운 미소를 연상하면서 더욱 더 윤효상의
날카로운 옆모습에 환멸을 느낀다.

그리고 그의 집요한 비겁함에 치를 떤다. 10년동안 참았던 지겨움이다.

"미스 리가 그러더군. 당신은 참 대단한 여자야. 우리가 장학금을 주고
있언 명구와도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면서?"

"미스 리는 우리 사이를 완전히 갈라놓으려고 결심을 했군요. 벌써
오래전에 지나간 이야기까지 당신에게 알려바치다니. 네, 한때 명구와
바람피웠지요"

영신은 몸서리를 치면서 윤효상의 말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미스 리가 자기에게 고백할 때도 어떤 점은 상당히 치밀한 각본을 가지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그러나 윤사장이 미스 리와 스캔들이 있든 없든 그녀의 마음은 이미
윤효상에게서 떠넌지 오래였다.

그것은 도덕적인 해석을 떠나서 도저히 윤효상에게 남성적 매력을
상실한 여자의 마음이었다.

그것은 지코치의 등장과도 상관이 없는 싫증이었다.

그녀는 아무튼 그와 더이상 살고 싶지 않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고 그녀는 그와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싶었다.

왜 그렇게까지 그녀가 윤효상에게 싫증을 느낀 것인지 그 이유는 영신도
모른다.

그냥 그보다 더 흉측한 사람을 만나더라도 윤효상과는 살고 싶지 않다는
그런 것이었다.

물론 돈이 없고 허덕거리면서 사는 입장이라면 그런대로 부부의 연으로
맺어져서 할수 없이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영신의 최상의 것을 추구하며 사는 여자다.

이제 다시는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다.

결혼은 재미가 없는 제도이다.

지극히 탐미주의적인 경향이 있는 영신은 이제 남은 생애를 그렇게
재미없게 타성에 밀려서 살기에는 자기의 인생이 너무 가엾다고 믿는다.

그녀는 염증이 뚝뚝 흐르는 얼굴로 윤효상을 쏘아본다.

"나는 정말 당신이 싫어요. 누구때문이 아니구요. 나는 좀 더 내 이상대로
살고 싶어요. 당신에게서 해방되고 싶다구요"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