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 앞에 선 윤효상은 등을 찔린 여우처럼 대단히 복잡한 얼굴이다.

자기도 큰 도덕적 실수를 했지만 자기 와이프인 김영신도 자기를 배신한
적이 많다.

그는 그런 사건들을 알면서 묵인한적도 있고 모르고 간적도 있고 하여튼
연상의 와이프인 영신은 무척도 그에게 버거운 아내였다.

그녀는 늘 웃으면서 뺨치는 여자였다.

아이도 못낳고 인습적으로 볼때는 나이도 자기보다 많으면서도 도무지
그녀가 가지고 있는 여왕병은 얼마나 안하무인했던가?

그 모든것이 그녀가 능력있어서가 아니고 김치수 회장의 거대한 재력과
천재적인 경영인으로서의 사회적 평가의 덕을 보는 것이었다.

김치수 회장은 눈이 먼 장님처럼 영신을 편애했다.

자기딸에 대한 무조건한 사랑이라기에는 도무지 아직 마흔 네살밖에
안된 윤효상의 혈기로 보아서는 구역질나는 부성애였다.

도대체 무엇이 김영신을 그렇게 사랑받게 하는 점일까? 윤효상은 갑자기
억울하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 딸을 젊은 애들과 춤추고 놀러다녀도 가만두고 자기는 이렇게 호된
벌을 받아야 되는가? 싸가지 없는 효상은 장인이고 뭐고 다 때려 부쉈으면
속이 시원할 것 같다.

장인은 교만을 떨면서 김영신과 효상을 자기의 안락 의자에 앉도록
한다.

"거기 앉아. 긴이야기할 시간도 의욕도 없다만 아무튼 이것은 중요한
이야기니까 다큰 자식들 일에 부모가 나선다는것이 도무지 마음에 안들지만
시간을 아껴서 결론을 내자.너 영신은 어떻게 할 것이냐?"

영신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아주 담담하게 말한다.

"저는 이제 다시는 결혼을 안하겠어요. 자식이라고 하나밖에 없는데 제가
부모님의 마음에 계속 상처를 내주게 되어서 죄송하구요. 아무튼 모든
결정은 아버지에게 맡기겠어요"

"이번 케이스는 그렇게 애비의 의사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다.

네가 선택해서 한 결혼이고 또 이혼도 내가 하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김치수 회장은 싸늘한 시선으로 사위와 딸을 쏘아보면서 분별력 있게
말한다.

"아버님,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요.

이번 일은 제가 죽을죄로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실수를 안하겠으니 용서해주십시요"

그는 장인에게 속으로 느끼는 증오심 같은 것은 싹 숨기고 속죄하는
모습으로 말한다.

"그것도 내가 결정할 일은 아니야. 결혼을 하고 몸을 섞고 사는 사람들
당사자가 결정을 할일이니까"

그는 인단을 두알 입에 털어 넣으며 나의 편애하는 딸이 무엇이라고
하나 기다린다.

이미 그는 영신에게 결론을 내 주었다.

그러나 그는 노련한 노인이다.

어디까지나 딸이 결정한 것으로 이미지업하고 싶다.

그는 무엇보다도 자기의 평판 관리에 철저한 경영인이다.

돌같이 차겁다는 소문도 그가 만들어 낸 신화이다.

그는 언제나 원칙론을 가지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