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개혁이 한보사태에서 92년 대선자금 공개에 이르면서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는듯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개혁은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한때 실시시기를 놓고 일부 반대의견도 있었지만 실명제는 언젠가는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는 확신에 따라 이만큼 추진된 것은 획기적인 결과이다.

이제 대선을 앞두고 "경제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경제를 잘 안다고 주장하는 후보군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이 경제발전을 위해 개혁을 강력히 추진해왔고, 그 개혁을
통해서 우리경제가 지난 4년간 많은 발전을 한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경제대통령이 인기있는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경제를 위한 개혁과제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우선 노동시장의 유연성문제는 경쟁국들과의 경쟁력 문제에서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처 총리시절 광부들과 맞부딪치면서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든 영국은
노동에 관한한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나라가 되었다.

후임 메이저 총리가 방한하였을 때 높은 경쟁력의 비결을 물었더니 서슴지
않고 영국 국민의 희생으로 이루어졌다는 대답을 했다.

노동시장이 유연하게 되면 시장수요가 많은 기술을 가진 노동의 임금은
오르고 수요가 적은 노동의 임금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많이 받게 된 사람은 조용히 있고 적게 받게 된 사람은 목소리를
크게 내 불평을 하니 민주사회에서 모두에게 인기있는 정책을 마련하기란
매우 어렵다.

김대통령은 임기초기에 고통분담을 호소했다.

고통은 어떻게 분담하더라도 인기없는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았던 대통령의 인기를 고통분담의 합의라고 해석
했으면 크게 오산이다.

금융개혁은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은행의 운영효율에 관하여 논란이 많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통화정책과
연계되어 있다는 점도 토론대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과거 어떤 경유로 일어났건 이미 발생한
부실대출금 처리방안을 마련하지 않고는 금융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다.

은행의 자산이 사실대로 평가되고 은행운영을 시장원리에 맡기면 금융
개혁은 금융계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통화정책도 정치적인 고려가 영향을 주지않고 경제적인 논리로 수행되면
굳이 통화론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이론은 가정과 전제조건이 이상적인 경우에만 성립한다.

현실적인 문제는 책임을 맡은 사람이 상식범위에서 주관적인 결정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기업의 경쟁력은 자유경쟁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지 이론에 밝은 경영학
교수가 경영을 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유경쟁에서는 단기적으로는 패배할 수도 있고 승리할 수도 있다.

단기적인 패배를 견디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재무구조가 튼튼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경쟁업체에 비해 경영 기술 노하우가
앞서야 한다.

아직 우리 기업들은 대재벌까지도 국제시장에서 시장경쟁을 해나갈 수 있는
튼튼한 재무구조를 갖고 있지 못하다.

재무구조 개선은 수익성을 제고하고 사업확장을 위한 신규투자를 자제해야
이루어질 수 있다.

이 문제는 정열적인 기업정신이 투철한 재벌총수의 몫이 아니라 칼날같이
차가운 마음을 가진 재무전문가들이 해야 할 일이다.

기업이 전문화돼야 하고 매출성장보다는 수익성제고 중심의 질적인 향상을
기해야 되는 이유가 세계시장의 자유경쟁은 피할 수 없는 시련이기 때문이다.

재벌정책보다는 시장 자유경쟁체제를 만드는 일이 경제력집중을 해소하는
방법이다.

이제 중소기업육성정책도 재고해야 한다.

중소기업을 위한 특별금융지원 정책을 시행하면 금융자유화가 추진되면서
여신기관의 입장에서 보면 수익성이 떨어지고 위험부담이 큰 중소기업
자금이 감소되게 마련이다.

이자가 조금 높아지더라도 특혜가 없으면 자금여유가 생기나 정부가
재정에서 부담하지 않는 특혜를 마련하면 자금원이 고갈된다.

중소기업에는 자금의 비용보다는 자금의 공급이 더욱 큰 문제이다.

교육개혁은 대학교수들이 기득권을 주장하지 말고 시장에서 자유경쟁을
하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

교육부가 정원제한을 없애고 교육규제를 철폐하면 우리교육에는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것인가.

국내대학의 질이 떨어져서 모든 학생이 해외로 유학을 갈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국내대학에 입학할 수 없어 유학하는 학생들이 늘어나 경상
수지적자에 기여하는 판국이니 이 문제야말로 이판사판이 아닐까.

김대통령의 획기적인 교육예산 증액에 대하여 왜 아무 말이 없을까.

과외공부를 줄이는 방법은 대학정원을 대폭 늘리는 것이다.

이것 역시 말많은 교수들에게 인기없는 정책일 수밖에 없다.

모두가 상식적으로 잘 알고 있는 일이나 누구도 나서서 말하지 않으려는
얘기들이다.

그러나 나라경제가 경쟁력 있으려면 이런 상식적인 일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일들은 유권자들에게 인기가 없는 일이기 때문에 선거에 나서는
후보자는 경제대통령이 되겠다는 얘기를 해서는 당선이 될 수 없다.

그래도 당선된 대통령은 인기없는 일이라도 나라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기반을 다져야 한다.

김대통령의 개혁은 계속되어야 한다.

개혁을 한 덕분에 대통령 아들도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처벌을 받는 것이
아닐까.

인기가 없다면 아들관리를 잘못한 아버지 개인의 인기일 뿐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해 과감한 개혁을 추진해온 지도자 대통령의 과업은 높이 평가되어야
하고 인기가 없더라도 계속 추진되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