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이 지배하는 사회.

사람에 대한 평가가 "어느 학교를 나왔나"에서 출발하는 곳.

분명 우리 사회에서 학력의 벽은 높다.

너도나도 좀더 나은 학벌을 따려다보니 학력 인플레란 사회문제까지
등장했다.

넘쳐나는 박사 석사들 틈에서 학사출신은 상대적인 저학력자로 느껴질
지경.

이런 형편에 대학졸업후 취직이 안된다는 것은 뉴스도 아니다.

박사학위를 받고도 놀고 있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이젠 박사출신 백수들을 따로 일컬어 "박수"라고 부를 정도다.

이중에는 해외유학파들도 상당수.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대학출신 박사학위자가 매년 5%씩 늘어나고
있다.

지난 2월에만 4천7백86명의 박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중 인문계 박사의 경우 학위취득 즉시의 취업률은 10%정도에
불과하다는게 "박수"들의 자체집계다.

그래도 이공계의 형편은 좀 낫다.

50%이상이 바로 직장을 잡는다.

양쪽을 합친 즉시취업률은 평균 20~30%선이다.

이런 "난세"에 학력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의 전적은 단연 돋보인다.

충북 영동공과대 김재규 총장(국졸), (주)태평양 이보섭 이사(고졸),
세진컴퓨터랜드 한상수 사장(고교중퇴)..학력의 벽을 넘어 굵직한 자리를
거머쥔 사람들이다.

이외에도 컴퓨터 프로그래머, 대기업 사원, 극작가, 정당 사무처 직원,
철학자 등 갖가지 화려한 직업군에서 고졸출신이 당당히 활약중이다.

소수이기에 더욱 두드러지는 이들은 "실력"이라는 곡괭이로 학벌사회의
철옹성을 깨부수고 있다.

중소기업을 이끄는 경영자에게서도 학력파괴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이 중소제조업체 7만3천3백64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중소기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 경영인중 49.5%가 대졸학력자.

그 뒤를 고졸출신(34.5%)이 바짝 뒤쫓고 있다.

중졸(5.4%)국졸(2.5%)등 고졸이하 톱경영인이 전체의 42.5%을 차지하는
것이다.

결코 적지않은 숫자다.

가방끈이 짧아 슬픈 사람은 힘을 내자.

학력의 벽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벽일 뿐이다.

< 김혜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