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코치네 오피스텔은 우리집하고 아주 가까워요. 그러니까 지코치만
불편하지 않다면 딴 데서 만나지 말고 자기 오피스텔에서 만나면 안정감이
있을 것 같네"

"누님집은 청담동 어디지요? 나도 알아두고 싶어"

"리베라 호텔뒤에 3층으로 된 적벽돌집이 하나 있어요. 제일 높고 번듯한
곳이야. 전망도 좋고, 강이 다 내려다 보이니까. 3층이 내가 사는 층이고
부모님은 1,2층을 쓰시고"

"왜 아이는 안 낳았어요?"

"아이가 없으라는 팔자인가봐. 노력을 했는데. 단념한지 10년도 넘었어"

"그러니까 남편이 바람을 피울 수 있다고 이해가 될 것도 같네요"

"촌스러운 소리 하시네. 촌사람인 줄은 알지만 정말 실망시키는 소리
그만해요. 그이가 애를 원한다고 말한 적은 없었어. 오히려 싫어했어.
나 하나로 만족한다는 소리도 많이 했구. 그야 양자를 들일 수도 있었겠지"

그녀는 아주 비정하게 말했다.

그녀의 그런 냉정함이 정말 마음에 안 든다.

그녀는 지금 자기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피를 나눈 형제같은 여자다.

그는 우직하게 그녀의 손을 다시 잡으며, "누님, 나를 버리면 안 돼.
가끔 냉정해 보일때면 나는 누나가 무서워져. 아니, 세상이 두려워져"

그러나 영신이 따뜻하게 미소하면서 그의 큰손을 두손으로 꼭 잡아준다.

이미 그들은 육체적인 사랑의 포로가 되어 있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완벽하게 결합되어 있다.

아무도 그들의 튼튼한 마음의 밧줄을 끊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영신은 사교적이고 시원시원한 여자지만 지코치에 대한 사랑만은 특별한
관계로 가슴속에 획을 그어 놓았다.

그녀에게 남성을 알게 해준 장본인이다.

관능의 왕자다.

특별하다.

"나는 누님이 다른 남자와 춤을 추면 그치를 죽여 버리겠어"

소년같은 지코치의 이 발언은 그녀를 파안대소시킨다.

하하하하, 정말 순진하고 사나이다운 순정이 아닌가?

"웃을 일이 아닙니다. 매일 누나의 방에 불이 꺼지는 것을 보고야 잠이
들것 같아요"

그는 투정부리는 소년처럼, 첫사랑을 하는 총각처럼 무모하고 광적이다.

"제발 자기나 골프치는 매력적인 여자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지내요.
나에게 흉한 정보가 들어오지 않도록. 그래서 우리 사이에 오해가 안
생기도록. 아셨지? 지코치님"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