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무선호출기(삐삐)보급률은 세계 1위.

웬만한 사람치고 삐삐를 안갖고 있는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다.

자연히 삐삐종류만큼이나 호출기 제조업체도 수없이 많다.

"보다 넓은 지역에 신호를 보내자"는 뜻의 와이드텔레콤(대표 김재명)도
그 중 하나.

그러나 이 회사는 짧은 역사(지난해 8월 설립)에 비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대표적 중소기업으로 꼽힌다.

처음으로 매출을 기록한 지난 3월 불과 7억원을 올리는 데 그쳤지만
올해말까지 총 2백억원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 놓았다.

김사장까지 포함해 직원이 20명에 불과한 이 회사로서는 결코 낮지 않은
목표치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와이드텔레콤이 가장 신경을 쓰는 부문이 제품디자인.

"이제 제품의 품질이나 성능은 기본이죠.

감각파 신세대들의 취향에 맞지 않는 제품은 아무리 부가기능이 많고 값이
저렴하다 해도 눈길을 끌지 못합니다.

튀지 않는 제품은 결국 팔리지 않는다는 말이죠"

김사장은 자체 디자이너뿐 아니라 외부 디자이너도 필요할 때마다 초청,
디자인부문에 관한 자문을 구한다.

이와 함께 삐삐의 주고객인 청소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최근 어떤 색상과
디자인이 인기가 있는지, 가장 원하는 기능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설문조사도
꾸준히 실시한다.

"가만히 앉아서 우리제품을 사주기를 기다릴 수는 없죠.

고객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파악하고 함께 호흡한다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런 김사장의 노력이 빛을 본 것일까.

최근 김사장에게는 멀리 싱가포르에서 낭보가 날아왔다.

싱가포르최대의 통신회사인 싱가포르텔레콤이 와이드텔레콤의 고속삐삐인
"아르떼"를 2만대 수입하겠다고 통보해 온 것.

금액만으로도 1백만달러에 달한다.

회사창립 이후 처녀 수출인 것이다.

"이번 수출을 계기로 국내 시장뿐 아니라 중국 동남아등지로의 수출에도
적극 나설 계획입니다"

경북대 전자공학과 출신인 김사장은 대학졸업후 삼성전자 백산전자 닉소
등에서 연구개발실장으로 일하다 내사업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와이드
텔레콤을 지난해 만들었다.

안정된 직장을 마다하고 험한 사업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가장 큰 후원자는
아내였다고.

이왕 시작할거면 한번 확실하게 해보라는 아내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이와 함께 대학시절부터 오랫동안 함께 호흡을 맞춰온 창업동기들도
김사장의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와이드텔레콤의 전직원은 모두 한가족처럼 화기애애하게
지낸다.

창업한지 1년도 채 안된 엔지니어출신 사장이라 어려움도 많았다.

무엇보다 대기업에 연구개발실장으로 있을 때 주어진 과제에만 몰두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한 회사의 대표가 된 만큼 관리와 경영을 모두 통괄해야
하는 점.

SK텔레콤이나 서울이동통신 등 대규모 거래처에 납품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발로 뛰는 것도 김사장의 몫이다.

지금도 정신없을 때가 많지만 조금씩 커가는 회사의 모습을 보면 힘든
것도 절로 잊게 된다고.

"사업이든 인간관계든 항상 진실하게 대하면 무엇이든 이루어진다"는 말이
생활신조인 김사장은 조만간 단순한 메시지전달이 아닌 종합정보단말기로서의
삐삐를 선보일테니 지켜봐 달라며 활짝 웃었다.

< 글 김재창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