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는 프로가 되고 싶지만 돈에는 프로가 될 생각이 아직은 없어요"

메이크업 아티스트.

올해 스물여섯살인 김지숙씨의 명함에 찍혀 있는 직업의 명칭이다.

프로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주저함없이 답하는 김씨는 이 일을
시작한지 올해로 4년째.

길에서나 지하철역에서 자신이 작업한 광고사진을 발견하면 모르는 사람
에게도 자랑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생활하면서 일거리를 고를수있는 수준에 와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온 길은 그리 만만한 길은 아니었다.

상명여대 교육학과를 졸업한후 임용고시를 봐서 역사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지금도 선생님이 되고 싶은 김지숙씨.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던 해, 임용고시에서 역사과목이 제외됐다.

선생님이 될 팔자는 아니었나 보다.

궁여지책으로 대학때 관심도 있었고 못해도 내 얼굴은 꾸밀수 있지 않나
하는 심정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은 극히 일부의 몫일뿐.

이 판에서 살아남는 사람들은 전체의 10%정도, 주목을 받는 사람은 1%밖에
안된다고 한다.

시작해서 1년동안은 선배들 가방시중에 잡일까지 도맡아 하고 차비나 받으면
다행인 게 현실이다.

이 과정에서 반수이상 걸러진다.

김씨도 학원이 있는 압구정동 갤러리아에서 압구정역까지 눈물을 흘리며
걸어온 날이 수없이 많았다.

"오기로 버텼죠.

못하는 것은 스스로 참을수 있었지만 남에게 못한다는 얘기를 듣는 것은
도저히 참을수 없었지요.

이 일을 해보지 않으면 죽을때 후회할 것 같은 사람은 한번 해볼만하다고
생각해요"

김씨는 스스로의 직업을 "노가다"라고 표현한다.

7kg정도 되는 무거운 가방에 그의 한쪽 어깨는 처져 있고 촬영을 나가면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함은 물론 어떤 때는 엑스트라로 광고에
출연도 하고 무대의 설치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과 사람다운 사람을 만나 그들을 연출하는 것이
이 직업의 보람이다.

96년 초가을 네슬레 커피 메이트의 전단광고를 찍을 때.

촬영을 마치고 장난으로 사진작가가 "너도 한번 찍어보지"해서 장난으로
한번 찍어봤는데 얼마후 메인모델을 제치고 자신이 광고 모델이 돼 곳곳에
나붙은 것.

김씨가 모델로 데뷔한 것이다.

자신이 메이크업한 사람중에는 전인화 조형기 이문세씨가 기억에 남는다고.

가장 때려치우고 싶을때는 설익은 모델들이 메이크업이 약간 잘못됐다고
생트집을 잡을때.

이해도 가지만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전인화씨는 작업하는 자신을 그지없이 편안하게 해줘 특히 기억에
남는다.

조형기씨는 견적이 많이 나와 작업하면서 약간 지루함을 느껴서, 그리고
이문세씨는 소문만큼 그렇게 길지 않아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작품이 되는 순간 사라져야 하는 메이크업의 속성은 김씨를 매일
매일 허무함으로 몰고 간다.

촬영이 끝나면 모델들의 얼굴위에 수놓아졌던 작품은 작가가 보는 앞에서
잔인하게 지워져야 할 운명.

"그래도 다시 아침이 오면 그 허무함이 느끼고 싶어 못견디는 것이
이 직업의 매력같아요"라고 말한다.

앞으로 명함대로 메이크업을 아트의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게 김씨의 꿈이자
희망이다.

숍도 하나 갖고 싶고 예쁜 아기도 갖고 싶고...

< 김용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