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발행한 어음의 공신력이 떨어져 제기능을 못하고, 수표는
주고받기를 꺼려하는 기피대상이 되고 있다니 큰 일이다.

잇따른 기업들의 부도로 이들이 발행한 어음이 휴지조각으로 변하고
은행의 자기앞수표마저 가짜가 적지 않게 나돌고 있는 때문이다.

이러한 신용질서의 교란은 금융거래뿐 아니라 모든 경제활동에
큰 혼란을 초래할 것임은 불문가지다.

더구나 요즈음 자금시장에서는 대기업부도와 관련한 갖가지 루머가
나돌고 또 이를 부추기는 양상들이 나타나 빠른 수습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사정이 이렇게 되기 까지의 1차적 책임은 극심한 불황에도 방만한
자금운용 등으로 도산위기를 자초한 기업들에 있다.

그러나 무차별적 채권회수나 대출억제 등을 서슴지 않는 금융기관은
물론 이를 방관한 정책당국도 그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연쇄부도파장을 줄이기 위해 금융기관들이 만든 소위"부도방지협약"의
역기능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물론 이같은 비상대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던 금융기관들의 입장과
그 당위성은 인정되지만 이로 인해 본래의 목적과 상반되게 부도를
오히려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못된다.

때문에 제도를 보완하든,운용의 묘를 살리든 어떤 방법으로라도
이같은 역기능은 막아야 한다.

특히 지원대상의 선정에 있어서 단순히 부도시기만을 연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고 "은행여신 2천5백억원이상의
대기업"만으로 한정한것 등은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종금등 제2금융권 기관들의 무차별적인 여신회수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은행과는 달리 담보조차 없는 그들로서는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나만 살겠다"식의 이기적 행동이 회생가능한 기업을 부도로
몰고갈 경우 금융권전체는 물론 자신들에도 결과적으로 손해를 끼칠수
있음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또하나 걱정되는 것은 소위 부실기업리스트 등 자금시장에 나도는
갖가지 소문들이다.

여기에서 거론되는 기업들에 대한 채권회수가 일시에 몰려들 경우
살아남을 기업은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그러한 소문들이 뒤늦게 사실로 확인되곤 했던 과거의 경험으로 보아
믿을수도 안믿을수도 없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기는 하지만, 금융기관들은
좀더 신중히 대처해줄 것을 당부한다.

소문들 중에는 과장된 것도 있고 근거없는 것도 많다.

잘못된 소문이 기업생명을 앗아가는 것은 범죄행위나 마찬가지다.

이와함께 신용질서를 어지럽히는 위조수표의 근절을 위한 대책마련도
서둘러야 하겠다.

물론 기업스스로 위기극복을 위한 실질적 자구노력이 선행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설마 부도야 내겠느냐는 안이한 생각은 금물이다.

정부와 금융당국도 시장이 정상화될수 있는 실효성있는 대책마련에
실기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