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혁신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의 심의를 거쳤다고 한다.

그러나 그 보도에서 정작 눈길을 끈 것은 2002년까지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정부 예산의 5%로 늘린다는 조항을 그 법률에 넣으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얘기다.

연구-개발투자를 크게 늘려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졌으므로 그런
움직임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실은 복잡한 문제에 대한
민중주의적 반응이다.

먼저, 법률로 먼 뒷날의 정부 예산의 내용을 정해놓은 것은 좋은 관행이
아니다.

예산은 정부든 기업이든 부드러워서 바뀌는 사회환경과 조직 목표를 쉽게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정부예산의 경직성이 문제가 된 처지가 아닌가.

다음엔, 그런 조치는 본질적으로 시장에 적대적이다.

기술의 소비가 대체로 경쟁적이고 배타적이므로 기술은 공공재가 아니다.

자연히 기술의 공급은 일차적으로 시장이 맡고 부족한 부분을 정부가 맡는
것이 순리다.

앞으로 정부의 연구-개발투자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겠다는 것은
기술의 수급에 관한 시장의 판단을 미리 배제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근본적으로 그런 조치는 연구-개발투자는 많을수록 좋다는 미신에 바탕을
두었다.

어떤 사회가 생산요소들 가운데 하나인 기술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데엔
적절한 수준이 있다.

그런 수준을 넘는 기술은 사회적 비효율을 뜻한다.

물론 이내 반론이 나올 것이다.

우리 사회의 연구-개발 투자는 너무 적지 않느냐고.

아쉽게도 연구-개발 투자의 적절한 수준을 가늠할 지식은 지금 존재하지
않고, 경제학의 발전 정도를 생각하면, 십년 안쪽엔, 그 문제에 접근하기
위한 원시적 방법론이 나올 가능성도 거의 없다.

그런 상태에서 5%라는 수치는 부르기 좋다는 것말고는 뜻이 없다.

게다가 지금 이용할 수 있는 자료들은 우리의 연구-개발 투자가 적은 것이
아님을 시사해준다.

근년 우리의 연구-개발 투자는 국내총생산액에 대한 비율에서 우리보다
성숙도에서 앞섰고 상품 수출도 곱절이나 되는 영국과 비슷했다.

투자의 연간 실질 증가율에서도 우리는 10%를 웃돌아 대만 다음으로 높고
일본의 세곱절이나 되었다.

영국은 오히려 투자가 감소했다.

이런 수치들은, 통념과는 달리, 우리의 연구.개발 투자가 적절한 수준을
넘는다고 말하는 듯하다.

문제가 있다면, 투자의 규모가 아니라 효율성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사정은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엔 시장으로부터 격리된 연구들을 많이
낳는다는 큰 문제가 있음을 일깨워준다.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는 주로 정부출연연구소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자연히, 연구주제는 그곳 연구원들에 의해 정해지며 기업들의 판단은
이차적 역할을 하게 된다.

그래서 자체로는 멋지지만 기업들이 쓰려하지 않는 기술들이 적잖이
생산되어 왔다.

기업으로부터 연유한 사업들도 대개 일회적이어서, 성공적 기술 개발의
요체인 "계속 혁신(continual innovation)"이 어렵다.

이런 문제들을 줄일 방책들을 마련하지 않은 채 정부의 투자를 늘리는
것은 자원의 낭비를 불러올 것이다.

정부가 연구-개발 투자를 갑자기 늘리는 것은 연구의 질을 낮출 위험도
안는다.

노태우 정권이 주택에 대한 투자를 갑자기 늘렸던 일은, 한 부문에 자원이
갑자기 집중되면, 갖가지 혼란과 비효율이 나오면서도 최종 제품의 질은
떨어진다는 사실을 또렷히 보여주었다.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가 갑자기 늘어나면, 연구자들과 연구소들에게 큰
혜택이 돌아갈 대형 과제들이 선호되고 규모는 작지만 내재적 가치는 큰
과제들은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미국 레이건 정권이 방위 기술 예산을 갑자기 늘렸을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났으니 이론적 기초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되어 실패로
끝난 "X선 레이저 무기"는 대표적이다.

예산이 많았을 때 NASA는 돈은 많이 들고 내재적 가치는 작지만 선전에
좋은 유인 탐험에 주력했다.

예산이 크게 줄어든 뒤어야 NASA는 조그만 무인 탐사선들을 이용한 과학
자료 수집에 눈길을 돌렸다.

연구-개발에 대한 정부의 합리적 태도는 기업들의 투자를 권장한 다음
공공재의 성격을 비교적 짙게 띠어서 기업들이 손을 대지 못하는 사업들에
투자하는 것이다.

정부 투자의 규모에 집착하거나 특정 기업들에 대한 위장된 보조금이나
다름없는 대형 사업들을 추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뜻에서 과학기술처가 추진하는 "창의적 연구진흥사업"은 우리의
주목에 값한다.

과학이 뻗어가는 생장점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창조적 기술을 얻는 것을
목표로 삼아 지식의 지평에서 가물거리는 흥미로운 주제들에 대해서
투자하겠다는 혁신적 사업이다.

연구자들에게 9년 동안 지원하면서도 관료주의적 사업관리를 막아서
창조적 업적이 나오도록 한다는 발상도 새롭다.

우리 사회가 원숙해지면서 모방 대신 창조를 지향할 필요성은 모든
부면들에서 부쩍 커지고 있다.

특히 과학과 기술에서 그렇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기업들의 연구-개발의 시평(time-horizon)은
서너해를 넘지 못한다.

그래서 실패의 위험이 아주 크고 상용화의 시점이 아득한 연구 사업들에
대한 투자는 정부가 시장의 결정을 적절하게 보완한다.

앞으로 정부가 연구-개발에서 나갈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