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확정한 공기업 민영화방안은 책임경영과 경쟁력제고라는 민영화의
대원칙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많은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는 한국통신 한국중공업 가스공사 담배인삼공사 등 4개 공기업의
민영화를 위한 특별법 개정안을 확정, 지난 6일 입법예고했다.

특별법안의 핵심은 민영화를 하되 경제력집중을 막기 위해 소유와
경영을 완전히 갈라놓겠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공기업민영화를 약속한 이후 지난 3년반동안 이눈치 저눈치
보다가 뚜렷한 경영주체 없는 어정쩡한 민영화로 최종 가닥을 잡은 것이다.

재계로 부터 사실상 민영화포기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닌성 싶다.

물론 정권말기에,그것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알짜"공기업을 몇몇
대기업에 넘길 경우 6공(공)말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때처럼 엄청난
특혜시비에 휘말릴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바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당초 "매각을 통한 민영화"를 약속했을 때 이같은
소유구조문제는 이미 충분히 예견됐었고 또 그 해결책으로 분할매각
등의 방식까지도 검토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차에 정부가 최종단계에서 민영화기업의 "소유"를 허용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린 것은 아무래도 공기업을 계속 정부의 영향권안에
잡아두려는 속셈이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정부는 민영화기업의 1인 지분한도를 10%로 제한한 것에 대해 공기업이
대기업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는
시중은행의 사례에서 보듯 본래 목적인 책임경영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 소지가 크다.

책임경영이 따르지 않는 민영화는 진정한 의미의 민영화라고 할수
없다.

문제는 거대 공기업에서 최고경영자체제가 얼마나 실효성있게 운영될
것이냐하는 점이다.

정부안은 유능한 경영자를 영입해 이사회와 이익목표 등에 대한 계약을
맺게해 책임경영을 유도한다는 것이나, 여전히 제약이 많아 그 효과가
의문시 된다.

민영화가 이루어진 후에도 감사원 회계감사가 그대로 유지되고 국정감사도
소관부처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받아야 하기 때문에 경영진이 정부와
정치권의 외압에서 자유로울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재계가 우려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점이다.

공기업의 전문경영인체제 도입은 경영외적 제약이 많은 상황에서
경영효율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크고 그 부담은 결국 민간기업에 전가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이 민영화의 근본취지는 공기업에 주인을 찾아주어
글로벌경쟁에서 살아남을수 있도록 경영을 합리화시키자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안은 경제력집중방지에 지나치게 집착해 독립경영
체제 구축이라는 정책목표를 크게 후퇴시키고 있다.

민영화 후에도 계속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아야 하는 껍데기만의 민영화를
위한 특별법이라면 왜 필요한지 의문시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