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소식감감하던 남북 적십자회담을 개최키 위한 예비접촉이 뒤늦게,
제3국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은 그 자체 기이하면서도 우선 반가움이 앞선다.

뭣보다 한쪽 주민의 굶주림이 해를 바꿔 세계관심의 표적이 되어온
터에 짐짓 양측 적십자는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질책에 어떤 변명도
정당화될수 없다.

남북 적십자가 이산가족 상봉을 주제로 실무접촉을 벌이다 중단한 것이
까마득한 92년8월의 일.

오는 3일의 베이징 접촉에서 만일 4년8개월 전의 결렬책임부터 서로
따지려 든다면 시간낭비다.

적십자의 시늉이라도 할 양이면 쌍방 대표들은 비록 등뒤에서 정치권력이
어떤 간섭을 하더라도 굴하지 말고 늦으나마 적십자인 본연의 자세로
복귀해야 옳다.

황장엽씨의 망명을 필두로 그동안 남북한 사이엔 체제의 명운이 걸린
사건들이 가속적으로 접종해왔지만 그 어떤 것도 의심할 여지없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북의 아사지경에다 대면 결코 더중요할수 없다.

불과 며칠전 엉뚱하게 화려한 김일성의 85회생일 축하행사와 창군기념
잔치가 안팎으로 억하심정을 들쑤시긴 했지만 그래도 혼동은 금물이다.

생각해 보라.

병정놀이를 과시하는 권력 핵심분자와 초근목피로도 연명이 어려운 백성을
어찌 한값에 매도할 건가.

그들은 한배에 탔어도 엄연히 가해-피해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지배층의 죄값을 그 밑에 신음하는 피지배 민중으로 하여금 주림과 아사로
지불토록 요구함은 확실히 세계인이 손짓할 일이고 길게는 민족사의 치부다.

어제 한적이 판문점으로 계속 고집하지 않고 접촉장소를 북적의 주장인
북경으로 동의한 결단은 백번 잘한 일이다.

남북이 적십자 접촉만은 한반도내 개최원칙을 고수, 분단이후 1백11차례를
흐트리지 않은 것이 차라리 놀랍다.

하지만 당면 주제에 비기면 회의장소가 어디냐는 사소하다.

북경 아니라 북극에서라도 만나 북한의 극한상황 구제를 위해 나라안팎
적십자운동에 불을 댕길 때가 왔다.

시간이 많지 않다.

저들에게 백성이 굶주리니 군량미를 푼다, 사열 등 군의 존재과시를
할 때가 아니다 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고 요구함은 말그대로 연목구어다.

그것이 바로 체제포기라는 강박관념에 그들은 단단히 포로가 되어있는
것이다.

코언 미 국방장관등 일부 국내외의 우려대로 성급한 대북지원이 현 북한
한계체제의 연명, 자칭 "전인민의 총폭탄화"구호가 말하듯 위기순간의
공멸적 파괴행동 가능성제고를 배제하진 못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응이 결코 수동적이어선 안된다.

역사에 기회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대량아사 개연성에 직면한 동포의 사전 구제에도, 북한 핵심권부의
자포적 모험의 예방에도 있는 열의를 다하는 능동성 적극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번 베이징에서의 남북적 접촉은 이산가족 문제보다 더욱 절박한 적십자
본연의 임무다.

결코 하찮고 작은 일이 아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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