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큼 나이가 든 사람이면 옛날 책방에서 책값을 10~15%쯤 할인받아본
경험이 있다.

가난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대의 학생들은 값을 더 깎아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이같은 풍경은 지금은 턱없는 얘기다.

도서정가제가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상식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책은 창작물이라는 점을 감안,공정거래법상 재판매가격유지금지 대상에서
제외되어 가격담합이 인정되어온 것이다.

이런 책값정가제의 둑이 무너지려 하고 있다.

정부는 공정거래법 시행령을 고쳐 1년이상 경과규정을 둔뒤 우선
학습참고서와 잡지값을 자율화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시간의 문제일뿐 일반도서 및 신문의 정가제까지 폐지하는
문제가 대두될지 모른다.

도서정가제는 우리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논쟁거리다.

시장기능을 중시하느냐, 문화창달을 우선하느냐 하는 문제와도 연결된다.

미국만 해도 정권에 따라 책값 재판매가 유지에 대한 정책이 다르다.

공화당의 레이건,부시 대통령때는 책값정가제가 "원칙합법"이었는데
민주당의 클린턴정권이 들어서자 "원칙불법"이 되었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은 문화정책과 연결하여 도서정가제를 대체로
인정하고 있다.

프랑스는 79년 책값자유화를 실시했으나 미테랑이 집권하자 82년부터
이를 수정하여 정가의 95~1백% 범위에서 자유롭게 판매하도록 했다.

일본은 98년부터 도서정가제를 완전 철폐하려는 방침이지만 출판계의
거센 반발로 공청회를 여는등 우왕좌왕하고 있다.

책값자율화는 할인경쟁을 유발하기 때문에 소비자에게는 이득이 된다.

특히 우리의 학습참고서의 경우는 가격거품이 부풀어 있고 채택비 비리가
시비되는 등 병폐가 많기 때문에 가격파괴에 정당성이 인정된다.

그러나 문화와 시장기능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박물관을 짓는등의 문화진흥사업은 국가나 제도의
개입이 있었다.

시장기능에만 맡기면 저급한 문화만 번창할 우려도 있다.

책을 싸게 팔기 경쟁에만 맡기면 영세서점들의 도태와 부수가 한정된
전문서가 위축될 소지도 있다.

어떤 곳에서건 연착륙이 곧 꾸준한 전진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