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던 소녀는 이제 없다.

"미자 미자, 나는 너같이 청초하게 생긴 여자를 찾고 있었어"

"나는 섹스가 좀 모자라요.

그래서 나이 많은 남자가 잘 가르쳐야 돼요.

그래야 쓸만한 여자가 돼요.

허니, 나를 정말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으세요? 그냥 하룻밤의 애인으로가
아니구요?"

"암.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나는 어린 여자를 좋아해요.

30이 넘은 여자는 할머니처럼 보이는 걸"

그러자 제인이 파안대소한다.

뭔가 잘 풀릴 것 같다.

서로에게 없는 점을 보완하자.

"하지만 저는요. 남자를 아주 깊이 알고 사랑하게 되기 전까지는 섹스를
가볍게 치르는 것은 부도덕하게 생각해요. 나의 아버지는 체면이 있는
외교관이거든요. 곧 차관이 될 거에요. 재수가 나쁘지 않은 한"

"나같은 늙은이 하고 노는 것을 반대하시지 않을까?"

그는 진정 그것이 걱정스럽다.

걱정 정도가 아니고 공포스럽다.

"박미자는 박미자에요. 우리 아버지는 아주 신식이에요. 결혼이나
사랑은 제가 하는 것이지 아버지의 몫은 아니거든요"

그러다가 그녀는 무식한 듯한 이 늙은 사장님에게 더 점수를 따기 위해
영어를 사용해서 특별한 느낌을 주기로 했다.

"허니, 나는 사장님의 성도 네임도 몰라요.

러브메이킹은 좀 더 잘 알아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나는 미국식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정조란건 한국식이 더 청결해요"

"건 그렇지. 우리는 짐승이 아니니까"

짐승처럼 벌겋게 달아올라 인사불성이 되었던 것은 이미 그가 아니다.

고상한 신사로 체면을 잘 유지해야 이 유식한 외교관의 딸하고 연애를
할 수 있겠다.

"젊어서는 나도 돈이 너무 없었지. 아까 돈이 필요하다고 했지?"

"네, 나는 요새 밍크코트가 입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걸 사려고 하던 참이에요.

아빠는 대단한 수재지만 공무원이에요.

공무원은 빛좋은 개살구거든요.

명예만 존경하는 거지왕 알아요?"

그녀는 깔깔 웃으면서 자기의 비극을 꽁꽁 숨긴다.

그리고 재기발랄하게 늙은 박동배를 가지고 논다.

그녀가 아편쟁이라는 것을 안다면 결코 아무리 어린 여자에게 환장을
한 박동배라도 결코 5분을 같이 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 제인처럼 위험한 여자가 어디 있을까? 그러나 박동배는 그런
지식은 전혀 없는 카사노바다.

약을 하는 여자와의 경험은 전혀 없었다.

"나의 부모님에 대해서는 걱정 말아요.

나는 한번도 내 연애에 대해서 간섭 받지 않았어요.

자유방임이라고 하지요? 나는 한국말을 잘 하고 싶어요"

"그럼 대학생이야? 방학에 나온 여대생이구먼"

그는 늙은이다운 의심을 가지고 심각하게 묻는다.

"벌써 학교는 나왔어요.

나 나이 적지 않아요.

30은 안 됐지만 틴에이저는 아니에요.

나이 많은 남자를 좋아할 만큼 인생경험도 풍부해요.

아이 러브 유. 마이 러브리 젠틀맨"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