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호텔의 룸에 도착하자 약간 맛이 간 초이는 힐끔한 시선으로 제인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녀는 초이를 향해 아주 따뜻하게 웃는다.

우아하고 기품있게 미소한다.

"야, 너 이름이 뭐라고 했지? 미안해. 같이 자고도 이름을 잊어서"

"미자라고 해요, 박미자. 다음에 물으면 안 가르쳐 줄거야. 미스터 초이"

"몇 살이지?"

"호호호호. 머리 나쁜 사람, 스물셋이라고 했잖아요?"

그녀는 마담이 시키는대로 이름은 박미자, 나이는 스물셋의 순진이로
연출한다.

누구에게나.

사실 몸을 파는 여자에게 나이와 이름같은게 무슨 상관 있겠는가?

그곳에는 거추장스러운 자존심이나 도덕적 철학적 요설따위는 필요없다.

늙은 남자나, 정력이 넘쳐흐르는 남자나, 돈을 주체할 길 없는
할아버지나, 남의 돈으로 사는 권력가나, 마담이 제일 무서워하는 깡패나
누구든 벗은 몸으로 침대에 누웠을 때는 다 똑같다.

제인은 이 남자가 구하는 것이 권태스러워진 결혼에서 얻지 못하는
섹스에서의 신선한 자극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예리하게 알아냈다.

"제가 먼저 샤워하고 올까요?"

"아니야, 같이 샤워해"

제인은 언제나 자기를 죽이고 사는 여자다.

상대가 하자는대로 해서 귀여움을 받는 것이 그녀의 천성이다.

생긴것보다는 마음이 더 연하고 아름다운 여자다.

그것은 꼭 자기 어머니 오미연 여사를 닮았다고 모두들 그랬다.

아마도 그녀의 그러한 다소곳함이 한국의 독재적이고 싶은 보통
남자들에게 무척 마음에 들었는가 모르겠다.

요새 젊은 여성들은 남자보다도 서양 여자들보다도 당당하고 자부심이
강하다.

샤워실에 들어가자, 살롱에서 마리화나를 피워댄 초이는 어느새 제정신이
아니다.

그녀의 허리를 껴안더니 자기의 성난 보물대감을 그녀의 유두에 대고
문지른다.

소리를 곱게 지르는 제인은 그러나 사실상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여서
별로 흥분이 오지 않는다.

여성은 섹스를 마음으로 하고 남자는 감각으로 한다던가?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녀는 남자가 할 다음 동작을 기다린다.

그는 타일위에 그녀를 반듯하게 누인다.

그녀는 팔려간 참외처럼 그가 하는대로 가만히 있다.

"좀 더 남자에게 도발적으로 해야지. 어이, 멍청한 박미자. 미자 미자...
내 첫사랑의 애인 이름도 미자였어. 사랑해. 내가 왜 너를 찾는지나 아니?"

"마리화나를 모두 기피하는데 나는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거든요"

그녀는 속으로 그렇게 대꾸한다.

누구도 빌리가 아니고 빌리처럼 거대한 몸으로 그녀를 짓이겨주지
못한다.

그녀는 순간 빌리가 그러워지며 코카인의 유혹에 빠진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