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에서도 번역 출판된 폴 크루그먼의 신저 "팝 인터내셔널리즘
(POP INTERNATIONALISM)"이 이목을 끌고 있다.

국제무역을 경제전쟁 무역전쟁이라고 군사대결처럼 표현하는 "속류
경제학"에 통쾌한 반격을 가하고 있는 선전포고 때문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지금 미국은 세계경제에서 대기업과 같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크루그먼은 국가와 기업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기업은 경쟁력이 떨어지면 쓰러질수도 있지만 국가는 균형을 유지하는
영속성이 있어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혹 국가가 망한다 해도 그것은 경쟁력이 떨어진 무역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생산성이 낮은 나라일지라도 일정범위의 비교우위산업은 갖고
있게 마련이라는 주장이다.

무역은 승자와 패자가 있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포지티브섬 (Positive Sum) 게임이라고 논증한다.

결국 일정시간이 걸리면 당사국 국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이 제3세계의 무역공세에 공포감을 갖고 위장보호주의적인 무역
장벽을 기도하고 있지만 사실은 저임금국가와의 교역은 GDP의 1%에 불과해
미국민의 생활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요지이다.

미국의 문제는 낮은 저축률과 기술투자의 부진이라는 국내적 요인
때문이지 결코 무역에 죄가 있지 않다는 점은 설득력이 있다.

한국처럼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에도 이것이 그대로 맞는 말이 될지는
의문점도 있지만 저축과 기술에 대한 강조에는 무리가 없다.

크루그먼은 세계적 베스트셀러 저자인 레스터 서로, 로버트 라이히,
타이슨 등이 전통경제학의 기초원리까지 무시하면서 제3세계 위협론으로
큰 법석을 떨고 있다고 통박한다.

심지어 폴 케네디는 애덤 스미스와 리카도를 혼동하는 우매함을 보이고
있다고 까지 혹평한다.

시대조류를 주도하고 있는 이같은 저명인사들이 임금 및 작업조건에
대한 국제표준을 제정케 유도함으로써 인도주의적 관심으로 위장된
보호주의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통상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의 용기넘친 새로운 저작을
음미해볼만 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