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사생활은 탁자위에 수북히 쌓여 있는 각종 신문과 함께 시작된다.

일간지와 경제지에서부터 스포츠신문에까지 이른다.

고객의 생활패턴의 변화와 각종 사고와 질병의 발생추이, 사망자수의 증감,
금융권의 상품개발과 판매량에 이르기까지 체크해야 할 부문을 살피다보면
옆건물의 유리창에 비치는 아침해로 눈이 부신다.

직장생활 4년차 한번의 실수는 가벼운 질책으로 용납되고, 담당업무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큰 잘못이 안되던 신참에서, 이제는 후배도 여럿 생기고
비중있는 업무도 처리해야 하는 회사원이 된 모습을 스스로 느끼곤 하는
요즈음 회사생활에서의 첫 출발을 되돌아 보고 싶다.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던때 수업시간에 접한 보험업의 매력이 새롭게
다가왔다.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을 도와주는 상부상조 십시일반의 보험의 기본
원리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마침 신경영 출범과 함께 여성인력의 공개채용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삼성에
입사를 지원한 나는 그룹연수를 마치고 간절히 원했던 회사의 상품개발팀으로
발령이 났다.

여성의 취업이 어렵다던 때, 지망하던 곳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돼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직장생활에서는 책에서 접할수 없었던 또 다른 일면들이 있었다.

거대한 조직에서 나의 모습이 너무나 작게만 느껴지곤 했다.

군대라는 접해보지 못한 조직문화를 몸에 익히고 있는 남자직원들과 비교해
보면서 "이곳이 지금 내가 꼭 필요한 곳인가.

내가 과연 잘해가고 있는 건가"하는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늘 새로운 대상을 위한 보다 나은 상품을 기획하기 위해 노력하고,
입사를 같이한 다른 여자 동기들이 영업지원 업무부터 교육, 디자인, 투융자
업무에 이르기까지 남자직원 못지 않은 열성으로 회사의 전 영역에서 임무를
다해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다시 힘을 얻었다.

요즈음 제3회 경험생명표 시행으로 바쁜 하루일과를 마치고 들른 호프집에서
팀원들과 함께하는 시원한 맥주 한잔과 사람사는 이야기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

올해 1월.

그룹 신입사원교육의 지도선배로 파견되어 신입사원들과 4주간의 숙박교육을
함께 하며 그들과 직장의 첫 선후배로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다.

직장인으로서의 내 모습을 다시금 뒤돌아 볼수 있었다.

신입사원들의 적극적 사고와 생활방식, 월등한 어학 수준에 약간 놀라기도
했다.

나 자신을 자기개발하는데 더욱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신입사원에게 여자선배의 존재와 회사의 조직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한 여성의 위치를 알려주려고 애썼다.

아직 햇살이 채 퍼지기 전인 아침 6시30분, 남대문 근처엔 활기가 넘친다.

겨우내 신세진 두터운 외투를 벗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자신의 일터를
찾아가는 수많은 삼성인들.

오늘도 나를 원하는 곳, 내 삶의 터전을 향해 씩씩한 하루의 첫 걸음을
옮긴다.

이선화 < 삼성생명 상품개발팀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