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현실과 내세를 이어주는 가교다.

종교인이든 아니든 종교가 현실생활에서 적절한 통제기능을 갖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많은 종교인들은 그들의 세속적인 재물얻기를 종교를 통해 기원한다.

천국과 극락을 설파하는 종교에서는 과연 재물과 재물 늘리기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을까.

대부분의 종교는 재물과 신앙은 양립할수 없다거나 무소유가 참된 삶이라는
등의 교리를 내세우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모든 종교가 언제나" 재물에
대해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우스갯소리지만 기독교든 불교든 회교든 세속 종교들이 만일 재물에 대해
극단적인 태도를 유지한다면 세속의 부자들과 싸움 한번 하기 전에 아마도
종단 자체가 먼저 문을 닫는 일이 발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요 종교들은 재물에 대해 다행히도 그리 폐쇄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부의 축적을 장려하는 경향이 있고 또 근면과 성실에
의한 부의 축적은 내세를 준비하는 정당한 절차로 인정되고 있다.

대표적인게 기독교다.

기독교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든가 "가이샤의 것은 가이샤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는
등의 전형적인 경구를 남기고 있다.

이들 경구들은 세속적인 부를 경계하는 것으로 영혼의 고결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물질(욕심)을 극복해야 한다는 종교 본연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종교개혁을 통해 세속종교로 거듭난 기독교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당시 신흥계급으로 등장한 부르주아(중산층)들의 이상을
관철시킨 종교로 세속에서의 노동과 재산모으기를 지극히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고 나아가 장려하기까지 했다.

예를들어 루터는 마태복음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하나님이 맡긴 자산을
훌륭히 관리하여 부자가 되는 것도 천국을 준비하는 길의 하나라고 옹호했다.

그의 이같은 교리는 나중에 막스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관과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정교한 이론으로 재해석됐다.

동양의 유교가 일본등 신흥 자본주의국들의 성공을 설명하는 키워드라는
분석이 많이 나와있지만 확실히 프로테스탄티즘이야말로 영국 미국 등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성공에 결정적인 기여를 해왔음을 부정할수 없다.

무엇보다 그들은 근면하고 지상의 재물을 절제있게 관리할줄 알았던 것이다.

굳이 종교가가 아니더라도 재물을 모으는데는 하나의 불변하는 철칙이 있다
는 점을 이들 사례는 잘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부지런히 노동하고 열심히 저축하며 재산불리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는 것이다.

과소비가 난무하는 요즈음 유교가 요구하는 성실성이나 기독교가 요구하는
세속에서의 부자되기는 다시 생각해볼 만한 여지를 남기고 있다.

침몰하는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정신의 개혁"도 있어야 할
시점이라는 얘기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