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의 부모는 샌프란시스코가 아니라 LA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는
맞벌이 부부로 가끔 학비도 부쳐주는 미국 부모로서는 조금 유하고
자식에게 관대한 그런 부모였다.

빌리와 제인은 상항의 명문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오메가 고급 손목시계를 팔아서 마약을 사게 했을 때에야 제인은 빌리가
그 시계를 부러워한 진짜 이유를 알았지만 이미 그때는 제인 자신도 아무
비판없이 그 손목시계를 풀러서 약을 사는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밤에 살롱에 온다는 손님중의 한사람이 자칭 재벌의
아들이라고 했는데 손목에는 롤렉스중에도 최고로 값나가는 것을 차고
있었다.

지금 제인은 돈이 필요했다.

오늘밤 버는 돈으로는 병원비를 할 생각이다.

그러나 만약에 그 남자들이 마리화나를 한다면 자기도 오래간만에
그 환각에 빠지는 행운도 얻어 걸린다.

그녀는 결사적으로 집에서 도망쳐 나오면서 어머니에게 한마디 할 것을
잊어버렸다.

제인은 자동차속에서 휴대폰을 빌리자고 했다.

미스최는 돈내라고 손을 내밀면서 휴대폰을 빌려준다.

한번 빌리는데 3분에 2천원이었다.

못 생긴 미스최는 살롱 사장언니의 종처럼 심부름을 하면서 월급을
받고 있는 악착스러운 올드 미스였다.

"엄마, 제인이야. 나 오늘 12시까지는 돌아갈거니까 아빠에게는
친구네집에 잠깐 갔다고 엄마가 변명을 잘 해줘.

엄마가 시키는대로 내일은 병원에 들어갈게. 그러나 엄마의 다이아몬드
결혼반지는 안돼. 그것을 팔게 할 수는 없어.

그것이 오늘밤 내가 엄마에게 죄를 짓는 가슴아픈 사연이유"

우여사는 그 아이의 멀쩡한 말에 눈물이 나온다.

"얘야, 나는 너를 위해서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으니 또
그 나쁜 곳에 가지말고 돌아오렴. 돌아와서 나하고 같이 있자"

그녀는 애원한다.

그러나 그 순간 전화는 철컥 끊긴다.

"엄마, 12시까지는 갈게. 걱정 너무..."

그 순간 미스최가 전화를 끊은 것이다.

미스최는 제인이 사납지 않기 때문에, 또 약을 하는 아이이기 때문에
함부로 다룬다.

어떻게 보면 그런 세계에서는 이런 아이들은 코를 꿴 생선처럼 다루기가
쉽다.

이미 제인같은 애들은 자기네가 사서 두름으로 걸어놓은 자기네 물건과
같다.

전화 한통이면 경찰에서 잡아가고,그애네 부모는 곤욕을 당한다.

그래서 제인은 미국의 무자비한 매춘조직에서도 쓸모가 별로 없는
마약쟁이 동양창녀로 전락했지만, 영동의 살롱가에서도 좀 건실한
손님들에게는 위험한 여급이다.

결코 사귀기 싫은 축에 끼는 밤의 여왕이다.

"제인, 오늘 오는 그애들 마리화나를 가지고 온다는 정보야. 나는
제인에게는 아주 안성맞춤의 손님이라고 생각해서 부르러까지 온거야.

너 돈 생기면 나에게도 좀 찢어 줘. 소개비를 주는 풍습을 너만큼 모르는
얼간이도 없어"

얼간이라니, 아무리 이런 데에 나와도 고운 말을 쓰면 안되니?
확 선오브비치. 그러나 제인의 말은 삼켜지고 있다.

그녀의 침묵은 우울과 함께였다.

언제나.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