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의 어머니는 너무나 기품이 있어서 절망적인 내심까지도 절제력
있게 표현했고 모든 고통을 잔잔하게 말해줬다.

만약에 공박사가 그런 경우 이 부인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이렇게
이성적이고 사리분명하게 자기의 비극을 극복할 수가 있을까? 공박사는
그 부인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운다.

그들은 병원을 나갈때 제인이 다음에 오면 지방에 있는 병원에 입원할
것을 약속했고 제인의 어머니 우미연 여사는 다이아반지라도 팔아서 제인을
시설 좋은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준비를 해오겠다고 약속하고 돌아갔다.

병원에 다녀온후 제인은 아주 조용했다.

그러나 그날 밤 제인은 삐삐를 받은후 또 사라져 버렸다.

"엄마, 어디 갔니?"

약국에 갔다 온다고 나간 제인은 한시간이 지나도 안 돌아왔다.

다급해진 우여사는 수위실에 전화를 넣는다.

"경비 선생님, 우리 제인이 나가는 것을 못 봤어요?"

"조금 전에 검은색 자가용에 탄 여자가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같이
가던데요"

오여사는 그 자리에 까무러칠 것처럼 되어 주저앉는다.

또 그 룸살롱의 마담이 데려간 것이다.

자기 차가 없는 제인은 살롱에 나가는 다른 아가씨들이 와서 대기하고
있다가 슬쩍 데리고가곤 했다.

유난히 우아하고 기품있게 생긴 제인은 돈이 필요했다.

미국에서처럼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해 몸을 팔면서도 그것이 도덕적으로
어떻게 나쁘다든가 그따위 생각은 안 한다.

오직 필요한 것은 입원비이고, 말하자면 그것 이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는
것이다.

그 순간만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가엾은 자기딸 메어리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굶주린 짐승이 가차없이 먹이를 낚아채는 것처럼 그렇게 본능적이다.

배가 고픈 사람은 이성을 잃고 먹는것 하나밖에 생각할 수가 없는
짐승처럼 충동적이 된다.

도둑질을 하거나 살인을 해서라도 굶주림을 해결하려는 것과 같다고
할까? 보통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도,상상할 수도 없는 무모한 짓을
하면서 아무 느낌도 없다.

그녀는 처음 빌리를 만났을때 그녀가 찬 고급 손목시계를 유심히
들여다보던 빌리의 그 탐욕스런 시선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먹이를 본 늑대의 광기어린 눈동자였다.

"나의 부모는 나에게 이렇게 고급 시계를 사준 적이 없어. 너희
동양인들은 자식을 자기몸보다 더 사랑한다며? 부럽다. 그 시계는 도대체
얼마나 비쌀까?"

그는 사뭇 그 시계가 아름답다고 칭찬하면서 맛있는 먹이사슬처럼
식욕이 동해 했었다.

그것은 마약에 대한 충동이었다.

그것을 안 것은 그 애와 육체적으로 하나가 되고 매일 함께 생활하게
되기까지는 잘 이해할 수 없는 탐욕적인 시선이었다.

그 녀석은 그때 이미 모든 가치판단이 마약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중증의
약물중독에 걸려 있는 환자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