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라는 것이 어느정도 지역색과 지역성 표방을 허용한다는 데에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본다.

지방자치의 많은 효용에 반하여 만연되고 있는 지역이기주의 때문에
위기론을 들먹이는 사람들도 이 점은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다.

지역이기주의와 애향심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보는 방향에 따라 모양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사업을 시행하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볼 때 주민들의 반대는 국가의
균형발전을 저해하는 지역의 탈을 쓴 개인 이기주의라고 할 것이며, 반대로
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생활권 보호라는 기본적 권리를 주장하는 정당한
행사일뿐 아니라 자기가 사는 지역을 아끼는 애향심의 발로로 표현될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이기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부정적인 외부 효과를 유발하는
혐오시설의 설치와 관련된 것이다.

지금 이러한 시설의 추진과 관련하여 사업주체와 주민간의 갈등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혐오시설 입지선정에 대한 일반적인 모델은 우선 결정하고
그 다음 홍보하고,문제가 지적되면 그때가서 보완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어
왔으며 더욱이 이러한 결정의 대부분이 소수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에도 주민의 참여를 배제한 채 그런 방법으로 일을
추진하려 한다면 주민의 반대로 추진이 지연되거나 무산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의 해결 방법으로 혐오시설이 설치됨에 따라 입게 되는 주민의 피해를
완화할수 있는 장치와 정치적 기술적 전문가가 있는 시민단체의 육성,
그리고 관련 주민들이 사업의 전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점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불신의
벽을 허무는 일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값으로 측정이 불가능한 불신의 벽을 신뢰의 끈으로
연결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효과적이고 근원적인 처방이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