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놓고 계절의 아름다움에 취해도 보고 싶건만 나라안팎으로 들려오는
소식들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지난해 말 노동법 파동을 비롯해서 한보사태와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
망명 사건으로 정국이 경색된 가운데 계속되는 경기침체는 투자의욕 및
투자환경을 악화시켰고 일천억불을 상회하는 외채는 경제전반에 대한
구조적 불안으로 치닫고 있다.

일부에서는 "한강의 기적"이로 불리는 한국경제가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남미의 허망한 후진국으로의 전철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과연 오늘의 한국이 겪고 있는 딜레마는 우리가 체감하고 있는 것처럼
최악의 상태인가?

동북아의 네마리 용으로, 태평양 시대의 주역으로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던 한국이 세계의 무대에서 벌써 퇴장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인가?

최근 어느 방송사에서 방영된 한국주재 외신기자들의 생활을 다룬
기획물을 시청할 기회가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외신기자들의 눈에 비추어진 한국은 분명 "성공한
국가"의 모델로서 무한한 잠재력과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젊은 국가,
즉 미래의 희망을 담고 있는 국가였다.

구미 서구경제대국들은 우리를 견제하고 있었고, 동남아 국가들과 동구권
국가들은 한국의 사례를 배우고자 했다.

어느 외신기자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만큼 큰 매력을 갖고 있는 나라는
없다고 했다.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분단국가이면서도 세계 10위권의 무역
대국으로서 한국은 아직도 무엇이든 가능케 하고 이루어 내는 신비의 힘을
가진 "미래의 실험장"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한국의 힘은 바로 "사람"이었다.

근면성과 성실성을 갖추고 불굴의 의지와 끈끈한 정으로 이어지는 유교적
공동체 의식으로 무장되어 있는 한국인 만큼 커다란 자산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값진 한국의 저력과 힘을 발견해서
배워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우리나라는 잃어버린 것보다는 이룩해 놓은 것이 더 많고 그것을
밑거름으로 더욱 큰 성취와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사람"들을 갖고 있는
나라이다.

아울러 어느 나라보다도 교육열이 높아 우수한 고급 인적 자원이 풍부한
나라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때, 우리는 지금의 난관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며
밝은 미래까지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매년 막대한 교육비를 투자해서 역량있는 여성인재들을
배출해 왔으나 그들이 참여하고 활동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이 충분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여성들의 사회진출 욕구는 어느때보다도 강하며 그
역량과 의식 또한 성숙된 단계이다.

이렇듯 우리에게는 아직 발휘되지 못한 여성들의 잠재력이 무형의
저력으로 남아있다.

더구나 다가오는 21세기 정보화 사회는 뛰어난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사람들의 시대이다.

결국 여성적 역량이 사회의 원동력이 되는 사회로 우리의 미래가 확실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과도기에는 어느정도의 시행착오와 실패를 경험한다.

문제는 그러한 난관을 극복하는 자세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는 짧은 기간에 너무나 많은 것을 이룩해 냈고 그 가운데
경쟁력있는 국가체제를 갖추기 위해 꼭 한번은 치루어야 할 산고를 겪고
있을 뿐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역사속에서 그리고 현실속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우리민족의 저력에 대한
믿음이다.

그 저력의 원천은 바로 역량 있는 "사람"들이다.

결국 우리의 미래는 사람들을 키우는데 있고 그것은 교육이 담당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훌륭한 인재들을 어떻게 적절히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과제라 생각한다.

특히 미래사회의 경쟁력을 결정할 "여성" 인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배려가 21세기를 대비하여 먼저 선행되어야 되지 않을까?

먼훗날 우리 후세들이 "한강의 기적"과 함께 기억할 또 하나의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우리는 바로 지금 새로운 출발을 위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