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의대 유전자이식연구소의 박웅양 박사(34).

그는 오늘도 실험실 한 구석에서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그가 하는 일은 유전자 생체이식 연구.

조물주의 신비를 푸는데 몰두하고 있다.

그가 유전자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84년.

서울대 의대 본과에 진학, 생화학을 접한게 계기가 됐다.

생명현상을 단순한 화학반응이 아닌 분자들의 조화로운 조합으로 설명하는
생화학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그는 의대를 졸업하고 임상의가 되는 대신 기초의학 연구분야의 길을
택했다.

친구들은 "보장된 성공"을 포기하고 가시밭 길을 가는 것을 우려했다.

주위의 만류에 맘고생도 했다.

그는 그러나 생명현상에 대한 "참을 수없는 호기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석사과정에 들어가면서 방사선 발암기전을 밝히는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인간"을 더캐보고 싶었다.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암유전자연구에 힘을 쏟았다.

실험실에서 "세포와의 싸움"을 한 것이다.

실험을 위해 생쥐에 암유전자를 이식했다.

"암에 걸린 생쥐"를 만들어냈다.

태어난지 하루도 안된 쥐들의 배를 갈랐다.

"표본실의 청개구리"가 따로 없었다.

그런날 밤에는 악몽에 시달려야했다.

2년여의 고생은 헛되지 않았다.

암이 자연발생하는 "기구한 운명"의 쥐가 탄생한 것.

선천성 면역결핍쥐와 당뇨병쥐 등 20여종이 잇따라 태어났다.

이들 돌연변이 쥐들로 항암제 개발분야에서 개가를 올렸다.

그는 95년 암유전자의 새로운 조절기전을 규명하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미국 생화학 전문잡지인 BBRC에 소개됐다.

그는 요즘 박사후 연수과정(Post Doc)을 밟고 있다.

유전자 파괴를 통한 생체연구를 마무리짓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뜻밖의 사건이 생겼다.

복제양과 복제원숭이가 차례로 태어나면서 고민에 빠진 것이다.

과학적으로 가능해진 인간복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빌 게이츠 마릴린 몬로 히틀러 등 이 양산된다면..."

그는 최근 며칠사이 이같은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무척 애를 썼다.

일부에서는 인간이 세포조작을 통해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신성모독이라고
들고 일어났다.

또 자연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무책임한 불장난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불치병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사람을 복제해 낼수 있다는 "희망론"도 나왔다.

그는 이같은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생명복제를 위해 이미 10년이란 세월을 바쳐왔기 때문이다.

실험실 안에서 인류를 위한 유용한 연구를 해왔다는 그의 생각에 혼란이
일어났다.

그래서 유전 실험의 사회적 영향을 곱씹어 봤다.

이제 그의 결론은 명쾌하다.

생명공학은 인간을 기아와 병마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마지막 열쇠가 될수
있다는 확신을 얻은 것.

문제는 기술의 오용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못담그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는게 그의 결론이다.

그는 유전자 복제기술의 악용을 막는 일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이제는 인간 복제에 관한 법규정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시기라고 밝힌다.

이 기술을 인간에게 적용한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가 뻔하기 때문
이다.

"우리도 인간복제를 가능케 하는 유전자 조작 실험을 엄격히 금지하는
"생명윤리강령"의 제정을 검토해야 한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유전공학이 "21세기 우성학"으로 잘못 이용되는 가능성을 미리막아야 한다는
것.

"유전자 이식이나 파괴를 통해 인간의 생명현상을 규명해내야지요"

그는 마음을 다잡는다.

인체의 각종 질환치료에 기여할 길을 찾아내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실험 하나하나에 혼을 담는 그의 모습에 비장함이 서려 있다.

< 글 유병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