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어디엔가 응달진 곳에는 아직 눈이 남아 있을 법도 한 이른
봄날이다.

다행히 날씨가 푸근하여 광장 여기 저기 무리를 이룬 낯익은 얼굴들이
오랜만의 만남과 업무를 떠난 홀가분함을 지껄이는 모습들이 제법
흥겹기까지 느껴진다.

이익고 시간이 되어 전상호 사장님과 김국영 상무 김도영 이사 등
임원분들이 도착하시고 이어서 산행취지에 대한 설명과 함께 간단한
산행안내가 "산야회" 창립 1주년 기념행사라는 명분 덕택에 내 목청에
실려 전 사원에게 전달된다.

이내 점심 도시락과 먹거리가 개인별로 분배되고, 관악산정을 향한 긴
행렬이 웃음 꽃 속에 천천히 움직인다.

대오의 선두에는 산야회의 골수산꾼인 필자와 이재모과장등 두명을, 각
부서별로는 선두와 후미에 날랜 회원을 필요한 준비물까지 지참시켜 끄는
모양새를 갖춘 셈이다.

박현아 사원과 장수완 과장 등이 뒷처리 및 솔선수범한다.

산은 계절이 이른 탓인지 헐벗은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을 그대로 들어내
보인다.

색감마저 추위속에 버렸는지 단조로운 풍경만을 연출한다.

가파른 언덕이 숨을 턱에 치받치게 하고 낙엽 밟는 소리가 지껄임과
웃음소리 보다 크게 들리기 시작하면서 부서별 구분이 없어진다.

세상 구경한 이래 처음으로 산에 오른다는 몇몇 여사원들이 산야회
리더들과 하나씩 짝을 이루어 마치 십년이나 사귄 연인들 모양을 해
가지고는 모두들 울상이다.

그래도 산행은 느리게나마 진행된다.

아마 단체라는 굴레가 그들의 발걸음을 위로 위로 끌어 올렸으리라.

산정이다.

산정을 정복했다는 자족감과 탁트인 세상을 볼수 있는 시원함에 모두들
고함도 지르고 웃고 지껄이고 야단들이다.

그렇게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전원이 관악산정에 올라 있다.

하산하기 시작한지 약 10분후 성화에 못이겨 좌정하니 맑은 공기 탓인지
밥맛이 꿀맛이다.

모두들 자리를 정리하고 하산길에 오르니 출발할 때의 흥겨운 분위기가
다시 연출된다.

더러는 뛰어 내리다 산야회 리더들에게 주위를 받기도 한다.

일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전사원이 모이는 자리는 통성명 정도 만을
해야 하지 않았던가.

심지어는 명함가지 주고 받으며 말이다.

근무지는 본사 강남 부산 안양 안산 등으로 흩어져 있고 게다가 한참
성장을 하는 회사이니 낯설은 얼굴들이 하루하루 늘어가고 고객사별로
흩어져 월에 한번 만나기도 쉽지 않은 환경이다.

그러나 우리는 산야회라는 여가 활동을 통하여 우리가 한가족임을 새삼
인식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