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경제는 멕시코식 외환위기와 일본형 장기불황의 위험성을
안고있다.

경상수지의 적자확대는 원화가치의 빠른 하락으로 이어져 외환시장의
불안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보그룹의 부도사태는 전반적으로 금융권의 부실화를
초래해 자금시장을 경색시키고 금융기관들의 대외신용도를 하락시켜
국내기업들의 자금조달및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으며 이는 결국
투자부진으로 나타나 실물경제를 장기불황으로 몰고가는 원인이 되고있다.

따라서 우리경제는 멕시코식 외환위기와 일본형 불황 가능성이 함께
존재하는 복합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물론 우리경제의 여건과 당시 멕시코의 상황을 비교해보면 내용면에
몇가지 차이점이 있다.

한국은 외자유입을 위해 인위적인 "원고"정책을 취하지 않아 원화가치가
기본적으로 경상수지 동향을 반영하며 지속적으로 절하되어 왔고 외환보유
규모도 상대적으로 많아 대외신용도 면에서는 아직까지 높은 상태에 있다.

경상수지 적자규모는 97년 하반기부터 주요국의 경제회복에 따른
수출수요 증가, 원화가치 절하에따른 부분적인 시차효과, 그리고 국내
투자수요 진정에 따른 수입감소로 인해 점진적으로 축소될 전망이어서
멕시코와 같은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적다.

그러나 92년 국내주식시장이 개방된 이래 97년2월말까지 외국인들의
국내주식 순매수규모가 1백57억달러에 이르고 있는데 이러한 자금은
경제여건 변화나 환율움직임 등에 따라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도 있는
성격의 자금들이다.

멕시코의 경우 주로 채권에 대한 투자가 많아 94년말 페소화표시
국채(Cetes)의 70%,달러표시 국채(Tesobonos)의 80%를 외국인들이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페소가치의 급락에 따라 채권매각을 통한 대량의 자금유출이
발생하여 외환위기가 생겼다.

한국도 경상수지 적자규모의 지속적 증가로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안정되지 못할 경우 주식자금의 대량 유출로 외환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

그간 수차례에 걸친 재정확대 등에도 불구하고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의 불황구조는 금융핍박(credit crunch)에 의한
"복합불황"이다.

일본의 금융위기는 주식및 부동산가격 폭락으로 인한 소위 "버블붕괴"
과정에서 은행들의 부실채권 증가, 주식평가의 감소가 기업에 대한 대출자금
회수 또는 축소로 이어졌고 이것이 경기회복 지연 또는 경기불황 장기화로
나타났다.

과거의 경기불황은 재고수준 변동에 따라 나타나는 실물측에서의 순환적
현상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사태는 금융부문의 부실화가 실물부문의 불황을 야기한
것으로 단순한 경기순환적 대응으로는 치유가 어렵다는데 문제가 있다.

일본의 은행들은 거품경제 붕괴의 후유증으로 결국 92년 4월부터
96년말까지 11개의 중소금융기관의 예금지급이 정지되기도 했다.

96년 9월 현재 전체 부실채권 규모는 29조2천2백80억엔으로 총대출금
4백75조4천4백5억엔의 6.1%에 달하고 있다.

특히 95년 8월 효고은행의 구제 합병은 "일본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는
신화를 깨뜨렸고 95년 9월부터 시작된 7개의 주택금융전문회사의 부실화가
표면화되면서 일본 금융시스템의 전반적인 안정성에 대한 위기의식이 더욱
높아져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일본식 금융위기는 멕시코처럼 외생적 문제가 아닌 내부적
요인에 의한 것이다.

한국 시중은행은 93년 이후 매년 대규모의 상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체의 대형부도로 부실여신이 오히려 증가하고 있고 94년이래
지속적인 증시침체로 대규모의 유가증권 평가손을 기록하고 있다.

96년상반기 현재 우리나라 은행권의 총대출규모는 2백68조원이고
은행권의 부실여신 비율이 일본에 비해 낮다고는 하나 시중은행의
경우 불건전여신을 기준으로 할 때 96년말 현재 총여신대비 불건전여신
비율이 낮게는 4.03%에서 높게는 6.69%에 달해 위험수준이다.

금융의 부실화는 대출여력감소 및 대출요건강화를 의미한다.

즉 대외신용도의 하락으로 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의 해외차입비용
증가, 기업에 대한 대출에 있어 금융기관들의 보수적 자세 견지, 그리고
금융기관들의 합병등 구조개선 가속화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최근
정부의 적극적인 금융완화에도 불구하고 자금흐름에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금융권의 불안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요인은 일본과 같이 실물경기를
장기불황에 빠지게 할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 일본은 금융기관들의 부실화와 투자 및 수출의존형 경제구조라는
점에서 유사점이 많다.

그러나 기본적인 경제체질로 볼 때 일본은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지닌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고 기업이나 산업의 대외경쟁력도 높은 반면
한국은 경상적자 및 외채규모가 확대되고 있고 기업들의 경쟁력도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더욱 심각하다.

금융산업 전반에 관한 개혁작업은 우리경제의 중기적인 흐름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시기에 추진되고 있는 만큼 멕시코와 일본의 사태에서
교훈을 얻어 금융부실로 인한 실물경제의 장기불황 가능성을 막을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