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조선조이래 "성불변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왔으므로 성에
관한 속담이 많다.

가령 맹세나 굳은 약속을 할 경우 "성을 갈겠다"고 말한다든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란 뜻으로 "이름도 성도 모른다"고 말한다.

또 상대방과 수인사할 때 성씨를 묻는게 상식이기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을 "10년을 같이 산 시어미 성도 모른다"고 비아냥 거린다.

현행 민법은 "성불변의 원칙"과 "부부각성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르고 부가에 입적하며" 부를 알 수 없는
경우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르고 모가에 입적한다" (781조)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민법이 새로 만든게 아니라 재래의 우리 관습을 성문화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성은 원칙적으로 부계혈통을 표시하고 성의 변경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일절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같은 호주 밑에 한 가구로 살면서도 조모의 성 어머니의 성,
며느리의 성이 각각 다르게 된다.

남편과 아내가 같은 성을 가지는 "부부동성주의"를 원칙으로 삼고 있는
외국인들에겐 이상한 일로 비쳐진다.

한자문화권중 중국은 각자 자기 성명을 사용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부부가 같은 성을 쓰든 각성을 쓰든 상관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본은 최근 정부가 "선택적 부부별성제"를 도입하려했으나 국회의
반대로 논의를 거듭하고 있는 형편이다.

독특한 것은 대만의 경우이다.

아내는 자기 본성위에 남편의 성을 덧얹어 (합관) 사용하는 복성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즉 "남편의 성+자기 성+이름"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한마디로 성이란 국가나 민족문화의 반영이지 이념이나 논리의 차원이
아닌 것 같다.

여성단체연합이 오는 9일 "부모성 같이 쓰기" 1백인 선언을 채택할
계획이라 한다.

가령 지수의 아버지가 김씨이고 어머니가 박씨인 경우 "김박지수"로
호칭하게 하자는 것이다.

부계혈통 위주의 호주승계제도가 남아선호사상을 부추겨 남녀아 성비
불균형을 초래하게 된다는 이유이다.

또 헌법의 "남녀평등 원칙"에 따르면 제기할 수 있는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여권신장이 중요한 문제이긴 하겠지만 현 시점에서 이같은 문제
제기가 타당하고 적절한지 모르겠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