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차려줄 꽃같은 마누라도 없는 놈이 생일은 무슨 생일, 그냥 내가
생일을 얻어먹는 날이 생일이지. 아줌마,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믿어유?
안 믿지유? 나도 알아요.

그러나 아줌마 나는 오늘이 진짜 내 생일인것 같아. 침대에 가서 착취
안 당하고 이렇게 멋진 데이트를 한 것은 정말 최근에 처음이거든요.

오늘은 나의 해피 버스데이요.

"왜 갑자기 그렇게 우울해져요?"

갑자기 지영웅의 얼굴에 덮이는 서글픈 안개의 그림자를 놓칠 리가 없는
김영신이다.

그녀는 유달리 뛰어난 센스와 분별력을 가져서 집요하게 지코치의
밤생활을 다시 묻는다.

"김영신 사장님, 나는 영어를 공부하고 있어요. 불어 강좌에도 다녀요.
중국어 강좌에도 다니구요. 그러니까 당구를 칠 시간도 없구 볼링할
시간도 요새는 없네요"

"어머머, 나는 불어를 전공했어요. 꼬멍 딸레부?"

그녀는 코맹맹이소리로 그렇게 말한다.

가장 불어의 초보적인 인사 말씀인데 지영웅은 그것도 못 알아듣는다.

하기는 자기의 옛날 시누이도 불어를 두학기나 들었다는데도 인삿말도
못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젊고 총명해보이는 지코치가 그런 쉬운 말도 못 알아듣다니 너무
한심하다.

"주로 외국어 공부에 매달리셨군요. 그럼 경희대학에서 골프선수로
날렸다고 누가 말했는데, 그건 어떻게 된거죠? 여기서 학벌 따지자는 것은
아니지만요"

지영웅은 화가 났다.

그는 누가 학벌을 가지고 웃기면 한방 놓고 싶은 놈이다.

중학교 중퇴의 신분을 그는 가장 비상처럼 가슴아프게 여기고 꼭꼭
숨기고 있다.

"교양이 높으신 분중에 학벌 자랑하는 사람이 더러 있습디다"

그의 억양이 영 살벌하게 나온다.

씹어 던질 인간같으니. 정주영 할아버지는 국졸 출신이라도 세상 영화
다 누리더라. 이 한심한 여사장님, 시껍다.

탁 조져버릴까보다.

"지금 무슨 입사시험 보시는 겁니까? 나는 김사장의 골프 코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오"

그가 드디어 볼부은 소리를 하자 김영신은 무안해서 하하하하하 하고
크게 웃다가, "운동선수들은 공부에 취미가 없고, 개발을 일찍 다른
육체적 단련으로 돌리니까 자연 지적인 단련이 소홀해지겠지요.

그러나 외국어를 그렇게 열심히 들으려고 하는 것을 보면 학구적이지
않아요. 칭찬하고 싶어요"

그러자 지코치는 우선 몸부터 일으킨다.

학교 이야기만 나오면 닭살이 돋는다.

"추든가 그만 가든가 하실까요?"

그가 아줌마들의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그의 이런 사나이다움 이었다.

그는 결코 몸을 팔 망정 자기의 기분이나 자존심을 죽이지 않는
꿋꿋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내가 비록 그대에게 몸을 팔고는 있지만 나도 인간이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