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저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그의 길을 간 우리시대의 ''아버지'' >

세상은 양극의 조화로 이루어져 나간다.

강함이 있으면 더불은 약함이 그 그림자를 메우고, 수구가 있으면 도전이
그 나태함을 일깨우고, 규율이 있으면 자유가 그 경직을 완화하고.

그런 제각각의 몫이 제기능을 다함으로써 경도되지 않은 제 길을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자리도 그 중의 작은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아버지이기에 힘겹고 고단한, 그리고 성과에 대한 찬사보다는
과오에 대한 비난의 위협이 더 큰 그 자리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것을 사람들은 마치 어리석음인 양 조롱하고 우화한다.

이제 아버지를 긍정하자.그들의 지난 과거와 인생을 인정함으로써
우리도 아울러 긍정의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발자취를 감히 돌아가는 그 마음이 세상에 대한 자신과 스스로의
삶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우는 길이다.

부정의 시각으로는 그 어느 것도 이루어 낼 수 없다.

역사와 과거를 부정함은 곧 아비를 부정하는 것이고, 아비를 부정함은
곧 자신의 미래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어머니의 길이 울타리를 아우르고 스스로를 희생하는 인고의 길이라면,
아버지의 길은 거친 세파와 맞닥뜨려 투쟁하며 나아가는 상처의 길이다.

세상의 모든 딸들은 누구나 어머니의 길을, 세상의 모든 아들들은
누구든 그 아비의 길을 따라 걸어야만 한다.

그것은 타고난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다.

또한 그렇게 세상과 역사를 일궈가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