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생활설계사.

쉽게 어울릴 것같지 않은 두 가지 직업을 몸에 잘 맞는 옷처럼 동시에
잘 소화해내는 사람이 있다.

얼마전 성인대상의 우화소설 "나의 예쁜 녹색뱀"을 펴낸 제일생명
남부영업국 구로영업소 윤미라 설계사(31).

어릴 적 아버지가 직접 짜주신 4단짜리 멋진 책꽂이에 매료된 이래
오직소설가의 꿈만을 키워왔던 문학소녀였다.

대학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에서 소설을 전공했다.

그녀가 제일생명에 입사한 건 지난 96년 5월.

"작가가 보험을 팔다니"라는 주위의 시선은 물론 스스로도 세일즈가
적성에 맞으리라곤 생각도 못했었단다.

그러나 시험만 보기로 마음먹고 영업소에 발을 들여놓았던 그녀는
보험영업에 처음부터 탁월한 소질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신입사원 교육중 첫 실습에서 남들은 한장 받는데도 쩔쩔 매는
고객카드를 열여섯장이나 받아왔던 것.

주윗 사람들이 놀란 것은 당연.

입사 2개월만에 표준설계사로서 자격을 갖췄다.

아무튼 나가기만 하면 계약이 이뤄졌다.

첫 작품집이 우화소설이라는 것도 사람들과의 교류나 직접 체험보다는
내면으로의 몰입과 사색에 의지하는 그녀의 글쓰기 행태와 무관하지 않다.

보험을 파는 게 사람들의 실제생활에 도움을 주는 일이라면 글쓰기는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하는 일이기에 두 가지 다 사랑할 수 밖에 없다고.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