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갓 신혼 6개월째인 대우전자의 강진환씨(29).

그는 요즘 결혼전보다 오히려 1시간 가량 일찍 일어난다.

그의 평균기상시간은 오전 6시30분.

일어나서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출근준비를 한다.

함께 출근하는 부인이 아침잠이 많은데다 "치장"시간이 워낙 오래 걸려
아침준비는 거의 그의 몫이다.

때로는 설거지까지 해치워야 한다.

8시쯤 대강 집안을 정리하고 나와 부인을 회사까지 차로 태워다주고 자기
회사로 향한다.

결혼전보다 오히려 출근길이 바빠진 셈이다.

주위에선 이런 강씨를 보고 "아침에 마누라가 해주는 밥도 못 먹는다니
딱하다" "와이프가 돈 몇푼 번다고 너무 기죽어 사는 것 아니냐"는 조롱반
농담반의 얘기도 많이 한다.

그러나 강씨의 답변은 단호하다.

"아내에게 남편대접 받겠다는 생각은 없다" "부부란 각각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반자"라는게 그의 결혼철학이다.

그래픽디자이너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는, 그래서 월급도 더 많이 받는
아내가 단지 자기와의 결혼때문에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면 개인에게나
사회로서나 불행한 일이 아니겠냐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제 신세대들에게 맞벌이부부란 소수의 "슈퍼우먼"들에게나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일과 가정, 양쪽을 다 최고로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집안일이 소홀하면 소홀한대로 직장에서 졸거나 프로젝트마감시한을
넘겨가면서도 대부분의 신세대부부들은 맞벌이를 고집한다.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여성이건 남성이건 일단 성인이라면 어떤 일을 맡아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원칙론자부터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아줌마가 되기 싫어서, 집안에서의 내 목소리를 더 높이기 위해, 살림만
하면 심심하니까 등 여성들이 내미는 이유도 다양하다.

남성들도 부인의 직장생활에 찬성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더 나아가 위의 강씨처럼 적극적인 "외조"를 펼치는 신세대남편들도
등장하고 있다.

이들 맞벌이부부들은 단순히 여자가 일한다는 점뿐 아니라 여러가지 생활
행태에서 기존 부부들과 다르다.

우선 여자가 바깥일을 함에 따라 자연히 집안일도 공동의 책임으로
돌아간다.

강씨와 부인 김희선씨도 "너는 빨래, 나는 설거지"하는 식으로 항상
가사를 나눈다.

또 금전관리도 각자한다.

각자의 통장을 갖고 집안대소사의 지출을 누가 할 것인지 의논해 결정하는
것.

생활비는 김씨가 주로 쓰고 적금과 대출이자는 강씨가 갚아나가고 있다.

맞벌이부부들이 제일 걱정하는 것은 2세문제.

둘이 사는 것도 빡빡하고 힘든데 아이가 생기면 어떻게 키울 것인가가
고민이다.

대개의 신세대 맞벌이부부들은 이 문제를 부모들에게 떠넘긴다.

현재 H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과정을 밟고 있는 정선희씨(30).

그녀는 아기를 낳기 직전 가양동의 신혼보금자리를 걷어치우고 반포의
친정집 옆으로 이사왔다.

현재 아기는 친정부모가 키우고 있다.

그녀가 아기를 손수 돌보는 것은 주말 이틀뿐.

죄책감도 들지만 워낙 바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그녀는 말한다.

성역할나누기에 둔감한 신세대들이 점점 증가함에 따라 앞으로 우리사회의
부부풍속도도 점차 새로이 그려질 듯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