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용 < 국제방송교류재단 이사장 >

지난 일요일, 모처럼 시간을 내어 예술의 전당 뒤쪽으로 우면산을 올라가
보았다.

아직은 매운 맛이 느껴지는 바람을 오히려 즐기며 한적한 산길을 오르는
일이란 그렇게 기분좋을 수가 없었다.

모든 일상을 저만치 밀어두고 겨우내 잎들이 다 떨어져 텅비어 있는 숲의
한 언저리를 바라보는 맛은 유다르다고 해야할 것이다.

노자는 도덕경에 "무위로써 하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
(위무위칙무불치)"고 했다.

마음속의 것은 다 버리고 자연이 요구하는 대로 버려두라.

그리하여 무위자적하면 도를 이루게 된다는 얘기를 했다.

그 뜻을 깊이 헤아리기는 어렵지만 겨울산의 한편에 서서 텅빈 숲을 바라
보며 때가 되면 버릴 것을 다 버리고서도 저렇게 여유로울 수 있는 자연을
차라리 경이롭게 느낀 일은 노자가 말하는 무위의 경지는 아닐는지.

최근 한보사태에 이은 황장엽 망명사건, 이한영 피살사건, 그리고 등소평
사망 등 정신차릴 수 없이 돌아가는 국내외의 빅 뉴스를 접하면서 오리려
노자의 무위론을 생각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역설일까.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마치 들끓는 냄비에 비견하는 우리의
요란한 반응과 지나친 염려 등을 보면서 이럴 때일수록 뭔가 지혜가 필요
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교롭게도 한국과 연관된 황장엽의 망명에 이어 등소평의 사망이 보도
되면서 북경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데, 중국정부의 신중하면서도
여유있는 자세를 나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자는 중국 특유의 만만디 자세가 아니겠느냐고 하겠지만 요즘 여러
사건들을 대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과 너무도 비교되기 때문이다.

첫째, 중국 정부는 언론에 공표한 내용에 대해 당당하고 자신에 넘쳐
있다는 점이다.

자기들은 마치 감출 것이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태도는 적어도 사건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표시라고 본다.

둘째, 사건이 중대할수록 결론을 쉽게 내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은 사실, 황장엽의 망명 전말에 대해 모든 정보를 소상히 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양국의 냉정을 찾을 수 있는 외교적 명분주기의
시간을 끌어가며 또 사건을 대하는 중국측의 진지성을 과시하면서 결정적
판단을 감추는 제스처는 관심을 가질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비해 우리의 자세는 어떠했는가.

온나라가 북새통을 이루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참 부끄러운 일이다.

조선조정쟁의 명맥이 되살아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고 정말 나라걱정
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과연 나만의 감상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일어난 일들이 아닌가.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벌주기 이전에 내 나라 내 국민이 저지른 일이
아닌가.

한번쯤 냉정을 찾자.

도대체 왜 우리가 여기까지 왔는지 고요히 마음을 비우고 무위로 돌아가
보자.

노자는 도덕경에서 또 이렇게 말했다.

"말이 많으며 자주 막히니 차라리 그 비어있음을 지키는 것만 같지 못하다.
(다언수궁 불여수중)"

국가를 위기에 몰아넣을 만한 일드을 놓고 침묵할 수야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남의 탓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잘못된 말로 일이 그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가 다급할수록 말을 아끼고 마음의 그릇들을 깨끗이 비워 차근차근
생각해 보는 여유가 아쉽다.

생각하는 여유를 갖는 것은 생각없는 조급함 보다 앞선 지혜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나라 전체가 깊이 생각하지 않은 어떠한 미숙한 말들 때문에 왜곡되고
혼란된다면 이보다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벌써 입춘과 우수를 지나 봄이 오는 문턱에 서 있다.

잠시 세상의 혼탁을 씻고 무위로 돌아가는 여유로움을 갖고 싶다.

아직도 우면산은 겨울티를 못벗은채 희끗희끗한 잔설의 서정을 보여 주고
있다.

번잡한 말이 없이도 각자 제 할 일을 하며 봄을 준비하는 자연을 바라보며
우리의 남루한 현실을 다시 생각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