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그룹의 부도파문을 계기로 국내은행들의 부실채권문제가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구체적인 부실채권 정리방안으로 은행들이 공동출자해
부실채권처리 전담회사를 설립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국내은행의 부실채권문제는 별로 심각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말을 기준으로 볼때 6대 시중은행중 한곳만 빼고는 총여신에서
부실채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1% 안팎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부실채권에 포함되진 않지만 6개월이상 이자수입이
연체된 고정여신을 포함하면 불건전여신의 비중은 평균 5%가 넘으며 10%에
육박하는 은행도 있다.

비록 부실채권의 절대규모로는 일본 은행들보다 작지만 일본과의
경제규모격차를 고려하면 오히려 일본의 경우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엄청난 금액의 부실채권을 서둘러 처리하지 않으면 대외신용도
추락및 은행경영의 악화는 물론 자칫하면 시중금리가 뛰고 자금유통이
마비되는 신용핍박(credit crunch)현상까지도 우려된다.

그럼에도 국내은행들은 80년대전반에 해외건설및 해운업계의 부실기업들을
정리하면서 발생한 대규모 악성채권조차 아직 정리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사정은 외국언론에서도 이미 여러차례 지적됐으며 한보그룹의
부도사태는 부실채권처리의 시급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계기가 됐다.

그러나 부실채권처리에 따른 부담을 누가 얼마만큼 어떤 형식으로
떠안아야 하는가의 문제때문에 이 문제는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보도된대로 은행들이 공동출자한 부실채권처리 전담기구에서 부실채권및
담보자산을 매입해 처분한뒤 매각차액을 결손처리하고 세금감면을 받는
방법은 미국과 일본 등에서도 이미 채택된바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이밖에도 예금보험기구의 자금지원, 담보부동산의
증권화, 중앙은행의 특별융자 등 다양한 방안이 추진됐었다.

하지만 어떤 방법이 채택되건 형식만 다를뿐 결국은 납세자의 부담으로
귀착된다는 점은 같다.

또한 소생가능성이 없는 부실금융기관은 가능한한 빨리 폐쇄해야 하며
시간을 끌수록 정상화에 필요한 비용부담만 커진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물론 우리경우에는 미국과달리 은행이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차이가 크며 부실은행처리를 잘못하면 전체금융체계의 불안정을 일으킬
위험도 적지 않다.

또한 기왕의 부실채권발생에 정부책임도 적지 않은게 사실이다.

따라서 대손상각, 비업무용자산 또는 무수익자산의 과감한 매각, 직원감축
등을 통해 부실채권을 최대한 자체적으로 처리하고 그래도 경영정상화가
어려운 은행은 합병까지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은행 소유구조의 개선을 포함한 책임경영강화방안, 금융감독체계의
개선 및 중앙은행의 독립 등을 통해 관치금융의 병폐를 뿌리뽑는 것만이
부실채권처리의 근본대책임을 강조해둔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