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직업이 참 많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회사원에서부터 정치인 의사 발명가 선생님
카피라이터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 많은 직업중 어떤 것을 택하느냐는 순전히 개인의 자유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라는 말도 이같은 직업의 다양성과 선택의
자유로움을 나타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중국집 자장면 배달이라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 최혁재씨(30)의 경우도
이같은 직업선택의 자유로움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학(한양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의 학창시절 목표는 공인회계사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반드시 "이것 아니면 안돼"라는 식의 마음은 아니었다.

주위의 많은 동료들이 그 길을 시도했고 자신도 으레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한 일인 것처럼 여겨졌을 뿐이다.

그는 그러나 몇번의 실패속에서 곧 마음을 달리 먹었다.

대학을 나오고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하는 것들이 어떤 정해진 틀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던 것.

대학이 마치 하나의 직업훈련소 같았다.

그게 싫었다.

"젊음"이라는 자산으로 조금이라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남들이 어떻게 보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문제는 제 스스로 만족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닌가요"

대학졸업후 최씨는 공사판 "노가다"를 비롯해 신문.우유배달 광고회사직원
고시원총무등 이것저것 경험해 본 직업만도 10가지가 넘는다.

몸은 좀 힘들었지만 열린 시각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는 게 최씨의 말이다.

철가방을 든지 이제 꼭 7개월.

지금까지 최씨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단순한 음식배달이 아닌 고객들에게 만족을 배달하는 직업이라는
나름대로의 직업관도 뚜렷하다.

더구나 요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명예퇴직이니 정리해고와 같은
말들에서 괜히 위축될 필요도 없다.

"제 주위의 어떤 분은 다니던 직장에서 어느날 쫓겨난 후 한동안은
아무것도 못하는 걸 봤어요.

물론 자기일 외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 그렇기도 하지만 이 넓은
세상에서 할 일은 의외로 많다고 봅니다.

눈을 돌려 세상을 약간만 더 크게 본다면요"

최씨에게 불만이 있다면 하루 12~13시간을 근무하다 보니 좋아하는 책을
읽을 짬이 부족하다는 것.

때때로 오토바이 배달중 교통단속을 벌이는 의경들과 가벼운 입씨름을
해야하는 일도 성가신 일중의 하나다.

그러나 대부분은 사정을 많이 봐준다고.

최씨는 그러나 평생 이 일을 할 생각은 아니다.

"육체적으로 힘이 많이 드는 게 사실이죠.

앞으로 1~2년 정도만 하고 일단 유럽배낭여행을 다녀 올 계획입니다.

세계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눈으로 직접 보고 싶거든요.

그 후 평소 관심이 있던 컴퓨터쪽으로 공부를 해 컴퓨터프로그래머에
한번 도전해 볼까 합니다"

배달이 있다며 급히 뛰어나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힘찬 활력이 느껴진다.

<김재창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