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과 한라산등 고산에 분포하는 주목과 같은 귀한 수목들이 죽어
간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실제로 많은 나무들의 잎이 붉게 변색되어 활력이 크게 떨어진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이것은 산성비 혹은 기후변화등 환경오염에 의해 산림이
쇠퇴하는 징조라는 일부 의견이 있어 충격을 주었었다.

그러나 얼마 후 고사된 잎들은 추위에 의한 냉해로 밝혀졌다.

그해 겨울에는 눈이 적어 냉해가 심했다는 것이다.

특히 고산에서 눈은 추위로부터 많은 식물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눈은 식물분포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 예로 따뜻한 남쪽 지방에만 분포하고 있는 대나무가 북쪽 강릉지방까지
올라와 분포하고 있는 것은 강릉 지방에 눈이 많이와서 한겨울에도 추위로
부터 대나무를 보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식물들은 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살아가는 방식을 달리한다.

즉 눈이 많은 지방에는 새로운 잎을 내는 눈(bud)의 위치가 땅바닥
가까이에 있는 지표식물들이 많고 눈이 적은 지방에는 그 위치가 땅속에
있는 지하식물이 많다.

지표식물은 겨울동안 쌓인 눈에 의해 추위로부터 보호를 받고 지하식물은
땅속에서 추위를 피한다.

한편으로는 눈으로 인한 폐해도 만만치 않다.

도시의 교통체증을 부채질하고 나무와 숲을 망가뜨린다.

산짐승과 철새들이 눈으로 뒤덮인 숲과 벌판에서 먹이를 찾을 수 없어
겨울을 지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같이 눈에도 좋고 나쁜 작용이 뒤섞이고 있으나 필자는 최근
수년간 유별나게 눈을 좋아하게 되었다.

겨울가뭄 때문이다.

눈은 빗물과 비교하여 4~7%의 강우효과밖에 없으나 덕장의 동태처럼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겨울가뭄을 달래주고 하천수를 맑게 하는 능력은
몇곱절이나 된다.

무딘 감성탓으로 식구들한테 핀잔만 받는 사람에게 눈내리는 날을
고대하는 낭만이 다시 찾아들고 있다.

직업의식이 오히려 감성을 더욱 풍부하게 하고 살찌우게 하는 이상적인
상황을 눈과 겨울가뭄이 연출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