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면 누구나 한번씩 하얀 눈으로 뒤덮인 들판과 초가집에서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굴뚝연기와 정이 스며 있는 고향사투리가 더욱 생각이
나고 그리워질 것이다.

처마밑에 달린 크고 작은 고드름이 따뜻한 햇살에 생명을 다한 듯 고개를
숙이면서 땅과의 만남을 시작할 때, 움푹 파인 상처를 감싸안은 널따란
마당에서 뛰어 놀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절로 가슴이 찡해 옴을 느낀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따스함과 포근함을 간직한 고향의 모습과 경험을
얼마전에 꾸었던 꿈처럼 희미한 추억으로만 간직하고 있다.

고향에 가지 않고도 발달된 전파매체나 인쇄매체를 통해 고향을 자주 접한
듯한 착각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교통과 산업의 발달로 고향가는 길이 예전보다 가깝다고 느끼지만
실제 고향을 찾는 횟수는 훨씬 적어 졌고 물질의 풍요는 누리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정신적 빈곤을 겪고 있다.

TV 컴퓨터 전화라고 하는 서로 다른 매체에서 개별적으로 이뤄졌던
일들이 종합정보통신망(ISDN) 도입으로 멀지 않아 단일 미디어상에서
일괄적으로 처리되어 동화상을 보면서 전화를 하는 신멀티미디어
시대에 다가설 것이다.

통신의 급속한 발전으로 우리의 꿈과 환상이 일상생활의 공간으로 내려와
점차 현실화되어 가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더욱이 이런 고도의 기술을 잘 이용하면 새로운 가치 창출도 이룰수 있다.

그러나 정보화의 노예로 전락돼서는 안된다.

아무리 동화상을 통해 얼굴을 보며 전화한다 하지만 직접 만나
따뜻한 정을 확인하며 대화하는 것만 못할 것이다.

전쟁의 폐허속에서 경제발전에 매진한 덕택에 놀랄만큼 외형적성장을
가져왔지만 정서는 기하급수적으로 퇴보해왔고 서구의 제도와 문화 또한
무분별적인 수용으로 인해 우리의 가치있는 전통이나 미풍양속등 우리 것은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제는 물질적인 구속과 인간적인 정의 궁핍에서 벗어나 고향 외양간의
점잖은 우공처럼 여유로움과 풍요로움의 지혜를 배워봄이 어떠할까.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