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상담을 하는 공인수 의학박사가 드디어 자기에게 조금씩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는 자랑을 하고 싶은데, 자기의 장사와 연관이 없는 사건에는
아주 냉담한 것이 소대가리 형님의 무정한 점이다.

그러니까 그가 마음이 좋은 것도 자기의 잇속과 관련이 있을 때만 보이는
휴머니즘인 것이다.

센스가 빠른 지영웅은 공박사의 이야기를 참고 만다.

"형, 좋은 아줌마 소개해주면 나도 형에게 근사한 구치시계 한개
선물할게"

언젠가, 어느 애인이 준 구치시계를, 사실은 지영웅이 그녀에게 멋있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부러워했더니 선선히 벗어주고 간 것이어서 자랑스럽게
차고 다닐때 소대가리 형님이 자기의 국산시계를 보이면서 "형님에게도 쩨
한번 선물해봐, 열배로 갚아줄거니" 했어서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제 이 화류계에서도 천천히 발을 빼 복권에 당첨되려다가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지 않은가?

그는 라면박스에 가득한 각종 장식품이며 시계를 들여다보다가 말고
우우하고 울기 시작한다.

감정을 시키면 반은 가짜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더욱 서글프다.

지영웅은 전화를 끊은채 수화기를 움켜쥐고 있던 손에서 수화기를
제대로 올려놓고 침대로 가서 천장을 바라보고 양 뺨으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닦는다.

휴지를 꺼내 코를 휭휭 풀면서 중얼거린다.

"박사님, 오늘은 우선 금요일의 손님을 정리해요.

짠 여자이기 때문이 아니고 나의 생활을 정리하기 위해서지요.

공박사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예요.

보세요. 라면박스에 가득한 보석을 보세요.

훔친 것도 많지만 아줌마들이 기분으로 벗어주고 끌러주고 간 것도
많어유. 박사님, 저는 한다 하면 하는 놈이에요. 믿으세요.

물론 공박사님께서도 돈 받고 해주는 상담이지만 아무튼 나는 그
똑똑하고 초롱초롱한 눈에 빛나는 진실을 보았걸랑요.

나를 사람 만들어서 쓸만한 놈으로 만들어줄 의사를 가지고 열을 내려고
하는 박사님의 진심을 보았거든요.

박사님, 나 바보 아니유. 너무 없어서 겨우 요 모양으로 살고 있지만요,
나는 정말 재수가 좋아서 지옥에도 안 갔지만요, 그래서 염라대왕도 못
만났지만요.

박사님, 그래도 결국은 복권에 당첨은 못 되어도 이쯤해서 여기서
손을 빼야지유. 나도 이제 피뽑는것 싫어유. 늘 겁이 나서 보건소에
가거든요.

가서 에이즈 검사를 해요.

피를 얼마나 많이 뽑는지유, 현기증이 날때도 있어유. 왜 그렇게
하는가구요? 요새 아줌마들이 그 증명서를 보고 싶어 하거든요.

일주일전에 해본 검사지만 그것을 보고 싶어해요.

물론 나는 내가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보여주지만, 그래야
또 화대를 듬뿍 받는 조건도 되고 사랑도 받지만유.

선생님, 정말 이제 이 징그러운 아르바이트는 그만 둘라요.

어젯밤에는 할아버지가 나타나서 호령을 하시더라구요.

공박사가 시키는대로 해야 네가 목숨을 부지한다구요.

아셨죠? 이 망나니를 한번 믿어보라구요"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