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현대자동차가 지난 79년 석유파동후 거의 20년만에
처음으로 직원들의 봉급을 제때에 주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은
우리기업들이 처한 위기상황을 실감케하는 충격적인 뉴스가 아닐수 없다.

현대자동차는 지난번 노조의 파업으로 생산과 판매에 차질이 빚어져
자금사정이 악화된데다 한보그룹부도사태로 은행대출도 어려워 28일 주기로
돼있는 일반관리.사무직 1만여명의 1월분 월급과 전체 3만4천여사원들의
성과급및 설 상여금 지급을 연기했다고 밝혔다.

회사측은 "노조 길들이기"차원의 고의성 지급연기가 아니냐는 일부의
시각에 대해 "부득이한 조치일 뿐 다른 목적은 없다"며 자금사정이
호전되는대로 지급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생산직 근로자 3만여명의 봉급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급여지급 연기파문이 이들 생산직에까지 밀려오는 것이 아니냐하는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같은 사태는 그동안의 파업에 따른 생산차질을 메우기위해 현대자동차
공장 근로자들이 자발적으로 특근을 하고 회사측은 고소.고발을 자제하는
등 노사화합의 분위기가 어느때보다 무르익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어서 더욱 충격이 크다.

우리는 저간의 사정으로 보아 회사측이 고의적으로 임금지급을
연기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처럼 근로자들이 마음 다잡아먹고 철야특근을 마다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러한 고무적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경영자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회사측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지난번 파업으로 무려 8만여대의 생산차질과
6천7백억원의 매출손실이 발생했다면 그 회사의 자금사정은 불문가지라고
하겠다.

현대자동차의 임금지급 연기사태를 보면서 우리는 새삼 깨닫는 바가 크다.

우선 국내 최우량기업중 하나라고 하는 회사의 사정이 이 정도이니
다른 회사들은 오죽 어려우랴 하는 점이다.

업종과 규모를 가리지 않고 국내 대다수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이러한
어려움에 빠져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자동차관련업계만 보더라도 완성차업체가 이런 형편이니 부품업체들의
사정은 어떠하겠는가.

또 한가지 우리가 실감할 수 있는 것은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도 불과
20여일 정도의 파업에 따른 후유증을 감당해내지 못할 정도로 국내기업의
체질이 허약해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도 지금보다 훨씬 강도높은 파업을 여러번 겪었지만 임금을
제때에 못줄 정도는 아니었다.

최근 몇년사이 우리기업들은 고비용-저효율의 구조적 취약점을 안은채
무한경쟁시대를 헤쳐나가느라 급격히 기력을 소진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 우리 모두는 뼈아픈 교훈을 얻어야 한다.

1천만 근로자들의 생계의 원천인 임금을 못주고 못받게 되는 사태는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기업의 체력강화를 위해 모두가 발벗고 나서야할 시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