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정권 거르지 않고 대형 금융부정사건은 터져 왔다.

그러나 규모로나 성질로나 상식선을 훨씬 뛰어넘은 한보사건을 보고
새삼 금융부정의 근본원인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자답으로, 주주아닌 정부가 민간은행의 임원인사 실권을
행사하는 관행이 원인이며 이것이 시정되지 않는 한 어떤 처방도 허사라는
결론에 이른다.

자유당 말기 시중은행 불하의 쓴 경험으로 시은의 대주주 자리를 지키던
3공때만 해도 정부의 은행인사 전횡은 오히려 당연시됐다.

그러나 문제는 은행 자율경영 기치아래 일부 국책은행을 포함, 모든
상업은행의 정부주식을 민간에 넘긴 후로도 그 관행이 보존되는데 있다.

근년 행장추천위를 설치,정부 간여가 배제된 행정선임을 말로는
공언하지만 은행인사에 정부입김이 사라졌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행장자리는 정권이 배분하는 공직 가운데도 꽃으로서,자주 정실
인사라는 비난의 과녁이 돼온다.

일단 정권의 배려로 행장자리에 앉고 나면 계통을 통하건 직접이건
찾아드는 실력자의 특별융자 청탁은 바로 지상명령이다.

자리를 걸지 않는 한 거절은 불가능하다.

양심의 명대로 정도를 걷는 인물이 행장에 오르는 전통은 불행히
서지 않았고 새 기풍을 조성할 충분한 시간여유를 어느 정권도 준적이
없다.

한보사건은 눈을 속인 단순한 부정대출과도 성질이 다르다.

세무직 일선공무원을 그만둔 직후 창업, 몇차례 거액 증회의 전력을
가진 사람이 총회장 직함을 만들며 금융기관 돈 수조원을 제돈 갖다
쓰듯 방치한 예가 어디 또 있는가.

설상가상, 정치권 하는 언행은 어떤가.

대통령 부자를 들먹이는 야당에, "그런 식으로 나오면 정치권이 수라장될
줄 알라"고 맞받아 치는 여당 성명은 무엇을 뜻하는가.

어디 한보에 떳떳한 사람 있거들랑 나와 돌을 던지라는, 싸잡는 식의
협박으로 알아들을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훈계가 통하기 힘든 세상이다.

아무리 규정이 엄격해도 현금을 다루는 금융업무에서 부정을 발본하기란
힘든 일이다.

그 속에 왕도가 있다면 은행에 주인을 세우든가, 아니면 최소한
천직의식이 입증된 금융 전업가에게 은행을 맡기는 길이다.

외국 합작은행이나 주인 분명한 몇몇 국내은행중에 좋은 실적을 올리는
엄연한 실례를 못본체 해선 안된다.

금융전업 육성책이 나오다가 쑥 들어갔다.

당장 적격자가 없다고 옆길로 빠지지 말고 더 꾸준히 밀고가야 결실을
맺는다.

세상에 상식을 저버려서 되는 일이 없다.

전직 행장들이 저질러 온 비리를 후임자가 고치는 풍토가 아니라
벙어리 냉가슴으로 잘못을 계속하지 않으면 자리보전이 아니라 인선부터
안되는 조직이 무탈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그것은 총체적 부패, 전통적 부정으로 범죄조직 아닌 공공기관이 그렇다면
나라가 결단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