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 소장>


1988년도에 로스앤젤레스와 워싱턴DC에서 "아-태시대개막"이라는 주제의
세미나가 열렸었다.

그 중에 한국경제를 보는 시스템적 시각이 있었다.

아시아의 네마리 용은 한동안 같은 속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해왔지만
앞으로 곧 한국이 탈락할 수 있다.

세 마리의 용의 경우에는 경제성장의 엔진이 설계를 위주로 하는
브레인파워였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근로자가 엔진이었다.

브레인 파워에 의한 설계능력의 강점은 세가지다.

첫째 새로운 제품을 시장에 빨리 내놓을 수 있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고, 둘째 부가가치가 높으며, 셋째 설계가 다양해서 일자리가 많이 생긴다.

그러나 한국은 너무 오랫동안 부가가치가 없는 OEM생산에 익숙해왔고,
근로자의 질이 낙후돼가는 반면 임금이 급상승하기 때문에 패러다임의
극적인 전환없이는 미래는 어둡다는 내용이었다.

똑같은 성능의 시계도 디자인에 따라 값이 수십 수백배로 달라진다.

디자인이 다양하면 일감이 많아져 일자리도 늘어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디자인에 돈을 쓰지 않는다.

디자인과 기술은 거저 얻고 싸게 사는 것으로 인식돼왔다.

설계능력이 없기 때문에 한국제품의 부가가치가 낮고 일자리도 생기지
않는 것이다.

지하철을 보자.

철로에 대한 설계는 있지만 시스템 설계는 없다.

싱가포르 전철역에는 역무원이 두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 지하철역에는 역무원이 20명이다.

수백년동안 발생할 비용의 격차는 엄청나다.

시스템 설계를 무시했기 때문에 발생한 비용이다.

전철을 갈아탈 때에는 내린 곳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층만
오르거나 내려가면 환승 승차대가 나온다.

이쪽을 탈까 저쪽을 탈까 망설이지 않도록 표시가 돼있다.

우리의 경우에는 환승과정에서 진이 빠지고 기분이 상한다.

출근시간에 기분상한 사람들은 연쇄적인 인간접촉에 의해 더 많은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기분상한 사람들의 생산성이 올라갈 수는 없는 것이다.

WTO시대의 경제문제는 케인즈 이론이 아니다.

시스템이론으로 풀어야 한다.

경쟁력이 게임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한국 경쟁력의 문제는 고비용-저효율로 잘 정의돼 있다.

고지가 고금리 고임금은 3개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문제다.

땅값만 낮추면 모두가 낮아진다.

우리나라 땅값은 경쟁국 땅값의 10배다.

땅값을 낮추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대부분의 선진국처럼 은행으로 하여금 땅을 담보로 잡지 못하도록만
하면 된다.

은행에서 많은 돈을 빌려써도 이자보다 땅값이 더 올라간다.

은행은 땅부자를 필요로하고 땅부자는 은행을 필요로 하는 공생관계가
유지돼왔다.

은행은 땅전당포에 불과했고, 돈은 땅부자에게만 흘러 경제를 왜곡시켰다.

은행이 땅을 담보로 잡지 않으면 땅부자는 땅을 팔아야만 먹고 살수 있다.

땅값이 하루아침에 곡예비행을 할 것이다.

근로자 생계비중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용이 40%를 넘는다.

땅값이 내리면 임금도 내리고 근로자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해소된다.

3고는 이렇게 간단히 해결될 수 있다.

그 여파로 은행은 신용평가와 경영합리화의 길로 나설 것이다.

일본 은행들은 1920년대에도 신용있는 기업을 찾아 나서지 않았는가.

여기에 은행의 독립성만 보장해주면 된다.

은행마다 15명 정도의 신뢰받는 인사를 선발하여 신탁위원회를 만든다.

은행장도 여기에서 선출하며, 중요한 의사결정도 여기에서 만장일치제로
결정한다.

은행장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게 되며 만장일치제 때문에 대출비리가
개입할 수 없다.

물류비를 줄이는 방법은 공무원이나 물류사들이 개발할수 있는 일이
아니라 포항공대 수준에있는 시스템공학자들로 구성된 설계팀만이 할수 있는
일이다.

그러면 그들은 전문가들을 동원하여 물류정책 및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다.

무조건 도로와 항만을 건설한다해서 물류비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미국은 1992년도에 1천6백10억달러의 고속도로 건설예산을 반영했다.

그중의 10%는 도로의 이용률을 극대화시키는 소프트웨어 시스템
설계비다.

싱가포르 항만이 훌륭한 것은 시설이 아니라 수백만개의 짐을 하역하고
분류하고 선적하는 일을 눈부시게 할수 있는 소프트웨어 시스템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항만에는 이런 시스템이 없다.

과도한 규제와 행정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청와대에 한시적으로 원숍
시스템을 설치해야 한다.

모든 민원을 여기에서 일괄 처리해주게 되면 원숍 시스템이 정착된다.

지금의 중소기업청 대신에 이러한 과정을 통해 원 숍 민원부가
만들어졌어야했다.

이상의 5고 문제가 정부의 몫이다.

노사문제는 정부의 역할중에서 가장 쉽고 간단한 문제였다.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해결책도 있다.

정부는 시스템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려고 하기 때문에
"작은문제"를 "큰문제"로 키우고 있다.

민주사회에서는 설사 노동법 내용이 아무리 근로자에게 유리하게 제정됐다
해도 절차가 정당하지 못하면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용기요, 신뢰를 얻는 길이다.

기업이 풀어야 할 저효율성 분야야 말로 경쟁력의 핵심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기업은 원가를 50% 이상 줄일 수 있다.

정부와 기업은 이 기막힌 사실에 하루 빨리 착안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리엔지니어링이 가장 시급한 문제다.

90만 공무원이 30만명으로 축소돼야 정부의 역할이 고급화될 수 있다.

그 가능성과 방안은 얼마든지 제시될 수 있다.

이는 시스템 리엔지니어링 전문가들에겐 매우 쉬운 문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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