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한 유혹은 가끔 그녀에게도 그것이 오히려 음성적으로 여성들을
괴롭히는 사회문제를 야기시키는 것보다는 이상적이지 않을까? 하는
사회문제를 논리적으로 생각해볼 때가 있다.

그러나 이 지구위의 남자들은 자기들을 위해서는 엄청난 기회를 용납하는
사회적 도덕적 룰을 만들어 놓고 여자에게 같이 돈을 벌고 참정권도 주되
그 이상은 금기시킨 것이 너무나 많다.

물론 성의 해방이 가져온 엄청난 세기말적 부패와 타락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든 여자는 남자보다 자유롭지도 못하고 해방되어
있지 못하다.

가장 자유스러운 입장인 공인수조차도 여자이기 때문에 못 가질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다.

더구나 요새는 금세 이혼이라도 할것 같이 열렬하던 민익수 박사도
네번째 아이를 아내가 낳은 후로 뭔가 많이 달라져 있다.

한때 그녀는 두명의 딸아이들이 성장해서 자기의 재혼에 충격과
악영향을 안 받게 되면 결혼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남편이 죽은 지도
십년이 넘은 지금까지 그녀는 매일 병원과 집을 뱅글뱅글 돌면서 나이를
잊고 살아왔다.

잊고 있는 동안에 잘난척 하고 뽐내며 명성높은 신경정신과 의사로
성장하는 동안 어느덧 그녀의 나이도 50을 바라보는 중년의 늙은 호박이
되어버리고 있었다.

오후 다섯시쯤 되면 공박사도 선다운병 같은 센티에 빠져들며 갑자기
우울해진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그녀는 다섯시면 병원을 나선다.

헬스클럽으로 가서 운동을 하면서 그 힘든 우울증을 이겨내는 것이다.

언젠가 그녀는 혼자 사는 치과의사 박선배에게 아주 현실적인 카운슬링을
받은 적이 있다.

"박선배님, 나는 오후 다섯시만 되면 세상이 허망해지고 나만 억울하게
산것 같고 갑자기 분노가 끓어오르며 발광할것 같이 됩니다. 이게 뭘까요?"

공박사는 진지하게 자기의 병을 털어놨다.

"신경정신과 박사님께서 웬 일이셔?"

농담이 심한 그녀에게 공박사는 무의식 중에 이런 화제를 터뜨렸다.

그 순간 공인수는 고름을 째는 기분이었다.

선배님의 달관한 듯한 활달한 카운슬링이 필요하다.

"공박사는 성적 욕망을 어떻게 해소해요? 무엇보다도 그것은 우리에게
당장 끄고 살아야 하는 불이지 않아요? 그 불은 살을 섞지 않고는 결코
해소가 안 되는 것인데 어떻게 다스리고 있지요?"

공박사는 약간 창피해져서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혼자 된지 20년이나 된 그녀는 시원스레 선배다운 솔직함을
털어놓는다.

그녀는 한번 재혼을 했다가 실패하고 혼자 사는지 십오륙년된 치과계의
유명한 여성 의사이고 자기 빌딩도 두채나 갖고 졸부로 살고 있는
여장부다.

"이제 나이가 60이 넘고 보니 좀 덜 심각해졌지만 그래도 아주 우리의
본능이 죽어버린 것은 아니니까 참 힘들구먼, 힘들어"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