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웅은 삼주일 전에도 함부로 아줌마들 욕을 하다가 혼이 났고 지금과
똑같은 짓을 했다.

그런데 그때 근석은 대담하게도 일으켜 앉히는 공박사를 꽉 껴안으며
강제로 포옹을 하려고 시도하다가 공박사가 누른 버저를 받고 달려온
김막돌에게 혼이 났던 상습적인 환자다.

가끔 환자들 중에 갑자기 미쳐서 날뛰며 기물을 파손하거나 의사에게
폭력적으로 덤벼드는 정신이상자가 있다.

그럴 때를 위해서 여자인 공박사는 노련하고 담력이 세고 주먹이
쇳덩어리같은 남자 경비원을 두고 철저히 보안을 담당시키고 있다.

공인수박사는 언뜻 보면 40대도 안된 애송이처럼 보일 때가 있다.

원래 앳된 얼굴에다가 헬스클럽에서 수영과 기구운동으로 단련이 된
몸매라 머리를 틀어올리고 있지만 나이가 어려 보여서 손해보는 의사중의
하나다.

환자들은 대개 50이 넘어보이는 경험많은 의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여러 종류의 약을 보내주고 있는 민익수박사는 유일하게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남자 친구이지만 그들은 일년에 두세번 서로 휴가를
내서 하와이 같은 곳에서 만나고 있으므로 한국에서의 공박사의 평판은
아주 점잖고 행실이 바른 독신 개업의로 알려져 있다.

그런 사정을 아는 사람도 간호사정도이지 아무도 모르는 일급 비밀에
속한다.

"다시 또 이상한 짓을 하면 나는 지영웅씨를 이 병원에 못오게
하겠어요.

진료를 거절할 자유도 나에게는 있으니까요"

망나니 지글러는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두손을 합장하고, "선생님
용서해주세요.

다시는 안그러겠습니다.

공박사님이야 말로 저를 인간으로 만들어줄 유일한 저의 스승이십니다"

그러고는 훌쩍훌쩍 운다.

그런 때만은 왼손을 사타구니로 보내서 주물럭거리지 않는다.

"다시는 안그러겠습니다.

제가 원래 할아버지밑에서 커서 아무 것도 모르는 개차반이라는
것을 아시죠.

그러니까 저를 붙들어주시고 이끌어주십시오. 다시는 안그러겠습니다"

아들이 없는 공박사는 다 큰 남자의 이러한 술수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가 불량배요, 더러운 지글러라는 것을 알기는 해도 그의 반성하는
태도가, 더구나 남자의 눈물앞에 공박사는 마음씨 착한 누나같이 된다.

그러나 공박사가 혼자 사는 미망인이라는 것을 그는 어제 오후 동회에서
갖은 수단을 동원해서 알아내고 완전히 착하고 미련해서 가엾은 젊은
골프코치가 되기로 했다.

이제 그의 공격목표는 의학박사 공인수가 되었다.

편두통을 핑계로 그녀의 병원에 나타나 두통을 계속 호소하기로 했다.

오늘은 그녀에게 헛된 짓을 안하려는 것이었는데 더 큰 망신을 당했다.

그는 울음을 안그치고 억지 떼를 쓰기로 한다.

눈물공세로, "박사님 저는 이제 박사님을 존경하게 되어서 무엇이든
하라는 대로 절대 복종하겠어요"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