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오빠"

종업원의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뒤돌아 보아도 누구를 부르는지 불명.

서울역앞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던 아마도 1970년쯤의 일이었다.

그런데 조금 뒤에는 "미스김!"하는 남자종업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결국 알고보니 저희들끼리 부르는 소리.

"요즘 아이들, 무슨 호칭이 그 모양인가.

진짜 남매가 시골에서 올라와 같은 식당에서 종업원 노릇을 하는줄 알았지"

나는 혼자 생각하면서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하고 자문해보고 딱히
"뭐라고 해라"라고 대답할 밑천이 없는데에 스스로 어색한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우리의 몇백년, 몇천년의 농경사회가 급속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정치.경제.교육.과학.기술.언어.풍속.습관 등 문화 전반에 걸쳐
그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 섭화가 일어났다.

그중에도 언어생활의 변화는 실로 엄청나다.

이를 개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용하는 사람과 향유하는 사람도 있다.

위의 식당사건(?)은 언어생활 변화의 초기적 징후일뿐이다.

"남녀칠세부동석"론까지 목소리를 높이던 유교문화에 젖어온 세대에게는
"상놈"이란 개탄의 소리를 들을 놀라운 언어의 혼탁화현상이 점점 심해지는
느낌이다.

식당여종업원은 무조건 "언니"이고 "아가씨"라고 하면 싫어한다고 한다.

"자기야"하고 부르는 젊은 남녀들이 늘어나고 "남녀학생들간에는 "김형"
"이형"으로 호칭하는게 자연스럽게 들리는 세상이다.

모든 부인의 호칭으로 쓰이고 가장 어려운 사이인 제수는 "미스김"(결혼전에
부르던 호칭)으로 부른다.

자기남편을 "아빠"로 부르는 삼촌 고모 어머님 아버님 형님 누나까지
제3인칭(<><>의 아빠, <><>의 아버지, <><>의 형님 등)을 제2인칭(자기본인의
아빠 ... 형님)인양 혼용해버린다.

언어도 사회변화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다.

"남녀칠세부동석"을 고수할수 없도록 사회구조와 생활관계가 바뀌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생활 변화는 "바람직한 쪽으로의 변화"가 이니라,
상당부분 "혼탁화, 저질화쪽으로의 변화"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특히 코메디 드라마 소설 등에서의 저질언어가 TV 신문 등의 언론매체를
통해 급속히 전국민에게 아무런 여과없이, 정사선악의 비판없이 보급,
통용되고 있다.

이대로 방치되도 좋은가.

이 나라의 그많은 국어학자와 사계의 권위자, 지식인들은 어디로 갔는가.

이들과 함께 앞장서서 우리의 언어생활을 순화시키고 바꾸어 나가야 할
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