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 개정안이 어제 국회에서 여당단독으로 기습처리
됐다.

우리의 경제 노동및 인권과 통일문제 등에 장기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주요 법안들이 구태의연한 "작전"방식으로 국회를 통과한 것은 분명
아쉬움이 남는 일임에 틀림없다.

또 참여와 협력의 새로운 노사관계 정립이라는 노동법개정의 취지가
야당과 노동계의 반대속에 정부 여당의 일방적처리로 어느정도 손상을
입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여당 단독으로
기습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관계법 개정안은 정당차원을 떠나 국익과 관련된 법안이며 이를
당리당략에 따라 마냥 방치한다는 것은 정치권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야당의 주장대로 노동법개정안을 연내에 처리하지 않고 해를 넘겼을 경우
봄철 임단협상및 대통령선거 분위기와 맞물려 법안처리는 불투명해지고
오히려 노사불안으로 이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게 될 경우 경제회생을 위해 긴급한 노사관계개혁은 기약없이
늦춰지게 되고 노동법개정을 둘러싼 노사갈등은 장기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본란이 노동법개정작업을 어떤 일이 있어도 연내에 마무리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온 것은 바로 이같은 현실인식에서였다.

절차상 다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여당의 단독처리를
이해하는 것은 노동법의 연내처리로 노사간 소모적 갈등을 빨리 매듭짓고
경제를 살리자는 여론에 주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당이 정부안을 기습 처리하면서도 몇몇 핵심사안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손질을 한 것은 정부안이 불러일으킨 형평성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한 시도로
평가할만 하다.

특히 정리해고의 사유를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을때"로 한정하고,
일정규모이상의 인원을 해고할 때는 대통령령에 따라 노동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등 정리해고의 요건을 원안보다 대폭 강화한 것은 노동계의
반대명분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반면 상급단체의 복수노조 도입시기를 당초의 97년에서 2000년까지
3년간 연기한 것은 경영계가 당면한 어려움에 대한 배려차원으로
이해된다.

노사관계개혁위원회에서의 노사 대타협이 실패로 돌아가고 정부가
단독으로 노동법개정을 추진하면서부터 예상됐던 일이기는 하나 여당의
노동법 강행처리에 대해 노동계 일부와 야당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법외 노동단체인 민노총은 즉각적으로 산하 320개 노조에 총파업을
지시했으며 일부 사업장은 이미 파업에 돌입하는 등 강경투쟁에
나서고 있다.

야당 역시 법적 정치적으로 원인무효투쟁을 벌이기로 결의해 정치권도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를 대표하는 한국노총이 총파업 위협에서 한발 물러나
합법적인 투쟁을 선언하고 노동법 개정에 따른 불이익을 사업장별
임단협상을 통해 보전키로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겠다.

노총은 매년 3,4월에 시작되는 임단협상을 내년 1월10일께로 일제히
앞당기고 이 협상에서 노조측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파업 등으로
대응강도를 높인다는 방침이라고 들린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노총산하 사업장들이 총파업에 들어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 우려되던 "노동대란"은 면할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전경련 경총 등 재계가 복수노조허용이 일단 2000년까지 연기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는 반등을 보이고 있어 후유증은 우려했던 것보다
크지 않을 성싶다.

우리는 정부의 노동법개정안에 강한 불만을 표시해온 한국노총과 재계가
이처럼 유연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음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동시에 후유증 극복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간곡히 당부한다.

물론 개정된 노사관계법중에는 노와 사가 각자의 입장에서 볼때 미흡한
내용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해당사자 모두에게 흡족한 법개정이란 있을수 없다.

노동법개정은 급변하는 국제환경에 대처하고 국가경쟁력회복과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점에는 국민적 컨센서스가 이뤄져
있으며 노사가 이를 인정해온 터이다.

총파업 등의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해 새노동법 반대투쟁을 벌이고 있는
민노총 지도자들도 대다수 국민과 현장근로자들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읽어주었으면 한다.

노동계의 입장에서 볼 때 내년부터 시행되리라던 상급단체의 복수노조
허용이 2000년으로 연기된 것에 불만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경영계로서는 정리해고제의 요건이 정부안보다 오히려 강화돼
아쉬운 감이 없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미진한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노사협력을 통해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당장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수용을 거부해서는 안될 것이다.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이 내년 우리경제는 노사관계가 그 고삐를 쥐고
있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내년의 노사관계는 극히 불투명한 것이 사실이다.

노동법 개정을 둘러싸고 노-사-정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진 가운데
대통령선거라는 정치적 요인까지 겹쳐 갈등이 사업장 밖으로 분출될
위험이 어느때보다 높다고 하겠다.

아직도 노동운동의 방향이 협력적 생산주의를 정착시키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노사간 신뢰의 기반이 다져지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이같은 문제점들은 노동법만 선진국 수준으로 고친다고 해서 저절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법체계의 선진화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일은 법을 철저하게
지키겠다는 각오와 법을 엄정하게 집행하겠다는 의지이다.

이렇게 볼때 노사화합 노력은 노동법개정 이후에 더욱 큰 중요성을
갖는다.

법개정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과 후유증을 하루빨리 청산하고 개정된
법의 틀안에서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힘을 모으는 것이 이제부터
우리 모두가 해야할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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