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이든 층과 젊은이들 사이의 간극이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텔레비전 쇼라도 볼것 같으면, 이른바 세대차는
절정에 달한다.

10대후반 20대초반의 가수들이 떼로 출연해 헌옷같은 의상을 입고
쉴새없이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노래인지 무언지 모를 것을 노래라고
부르는데 그것이 뭐가 좋다고 젊은애들은 저 야단인지 도대체 이해가
안된다는 것이 나이든 사람들의 한결같은 불만이다.

그런가 하면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대로 노년층이 좋아하는 트로트 가수들이
나와 한과 설움과 눈물에 겨워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는 것을 보기만하면
채널을 돌려 버린다.

지겹고 촌스럽다는 것이다.

"한국동화구연 아버지회"가 최근 서울시내 남녀 초등학생 91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신세대의 의식성향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버스나 지하철에서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한다"는
설문에 양보한다는 22.1%에 불과하다.

또 "부모에게 높임말을 쓴다"는 21.2%에 그쳤다.

그리고 아버지의 직장 이름을 정확히 모르는 응답자가 절반이 넘었다.

이같은 세대차는 단순히 오늘의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얼마전에 발견된 로마의 유적에 뜻모를 문자가 발견되었는데 고고학자들이
그것을 해석해 보니 "요즘 젊은애들은 버릇이 없다.

우리가 클때는 안그랬는데"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사실 세대차라는 것은 단순히 감각적인 차이만은 아니다.

대체로 한국의 경우 70년대이전에 태어난 세대와 그이후 세대간에는 사회
경제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61년에는 불과 82달러에 지나지 않았으며
<>62년 87달러 <>63년 100달러 <>69년 210달러 <>70년 252달러였다.

즉 70년도 이전에는 절대빈곤에 헤매던 시기였다.

이때는 엥겔계수(음식비가 차지하는 비중)가 50%를 넘었기때문에 문화적인
생활은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71년도에 288달러 <>77년 1,008달러 <>90년 5,659달러 <>95년
10,800달러다.

70년도이후 고도성장시대에 성장한 세대는 결핍을 모르고 자란 세대이다.

그러므로 70년이전세대와 이후의 세대에 의식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눈물과 한숨을 모르는 사람이 그런 정서를 담은 노래를 좋아 할리 없다.

마찬가지로 가슴속 깊이 한이 맺혀있는 사람에게 이별의 아픔조차 빠른
리듬에 맞춰 춤추면서 날려버리는 젊은세대의 정서가 구세대와 동일할 수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같은 서로 다른 성장배경을 가진 세대가 사이좋게 우리
사회를 끌고 나가야 한다는 문제다.

그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

서로간의 차이를 솔직히 인정하면서도 상대가 자신과 다른점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사회에는 남북간의 대결, 지역감정, 빈부격차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나 많다.

여기에 "세대차"라는 문제까지 새롭게 쟁점이 되어서는 안된다.

세대차가 새로운 사회문제로 굳어지기전에 남녀노소 모두가 세대차이
극복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이다.

조성헌 < 동보물산 고문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