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달 격에 어울리지 않는 주례를 보게 된적이 있다.

아직 나이도 걸맞지 않고 인생의 경험도 많지않은 처지라 주례서기를
사양하고 있는데 이날은 우리청내 커플이 탄생하는 날이라 어쩔수 없이
주례를 맡게 됐다.

우리청에는 처녀 총각직원이 많고 그중에서도 30세이상된 속칭 노처녀
노총각이 유달리 많다.

이들은 대부분 한분야에서 오랫동안 근무해 왔기 때문에 그분야의
전문가로서 손색이 없는 재원들이다.

단지 혼기를 놓치고 설마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나이를 먹게 된 것뿐이다.

몇달전부터 우리청에서는 이들에게 짝을 찾아주자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직장분위기 활성화차원에서 청내커플을 많이 탄생시켜 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처녀 총각 맞선보기 오찬행사도 해보고 청내 결혼을 하는
사람에게는 순금 10돈쭝에 해당되는 사랑의 열쇠를 증정하고 당사자가
원할때는 청장이 필히 주례를 봐주며 청내 합창단이 결혼식장에서 축가를
불러 준다는 인센티브도 내걸었다.

이러한 움직임 이후 지난달에 첫 청내커플이 탄생했다.

이들은 같은 통근버스를 타고 다니고 근무후 청에서 실시하는 제2외국어
연수를 함께 받으면서 인연을 맺게된 모범적인 커플이었다.

양가부모와 친지들은 물론 많은 동료직원들의 뜨거운 축하 박수가
예식장을 가득 메웠고 청내합창단의 축가속에 전직원의 이름으로 사랑의
열쇠가 증정되었다.

익숙지 못한 주례솜씨였으나 이들에게 축복의 말을 전하는 필자의 마음은
흐뭇하기만 했다.

자기 소속과에서 이들 신랑 신부를 배출해 낸 과장들은 마치 자기가
혼주나 된것처럼 서로 자기네 직원이 더 잘났다고 뽐내는 폼이 대견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새해 들어서면 필자는 이 소중한 사랑의 열쇠를 전수하기 위해 복에 없는
주례를 자주 서야 될 것 같다.

벌써 제2 제3의 커플탄생이 예약돼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랑의 열쇠가 우리직장 분위기를 훈훈하게 만들고 동료간에 따스한
인정의 샘을 심어 준다면 아무리 바쁘고 솜씨없는 주례지만 흐뭇한 마음으로
열심히 쫓아 다녀야 할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