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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영 국토개발연구원장(52)은 우리나라 국토개발의 "최고" 전문가다.

지난 93년 건설부차관으로 6개월동안 "외도"한 것을 제외하고는 미국 유학
에서 돌아온 79년부터 줄곧 국토개발연구원에서만 몸담아왔다.

제2, 3차 국토종합개발계획 지역교통 종합계획 등 각종 굵직한 개발계획들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쳐 나왔다.

도시계획 교통부문의 권위자이기도 한 그는 도시계획과 교통분야가 조화를
이루는 생동하는 도시조성에 많은 기여를 했다.

획일주의적 도시계획가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도시공간과 국토환경 조성에
애착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게 주위의 평판이다.

그는 소설가이기도 하다.

65년 대학재학중에 한국일보 현상공모에 "회전목마"라는 장편소설이 당선돼
문단에 등장한후 틈틈이 펴낸 소설이 4권이나 된다.

지금도 그는 "여전히 문학청년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그를 안양의 국토개발연구원 원장실에서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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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추창근 사회2부장 ]]]

-저술활동이 매우 활발하신 것 같습니다.

언론에 기고하는 것도 많고요.

요즘엔 어떤 책을 쓰고 계십니까.

<>이원장 =그동안 모두 11권의 책을 냈습니다.

소설 에세이 하고 제가 전공한 도시계획 교통부문에 관한 것들이지요.

지난해에는 서울 도시계획의 미래를 담은 "서울 21세기"라는 책을
한국경제신문사와 함께 냈지요.

지금은 국토의 미래상을 그린 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소설에도 여전히 관심을 쏟고 있고요.

-우리 국토환경을 선진국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국민소득과 의식수준에 비해 국토환경, 특히 주거환경이 열악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실제로 어느 정도 차이가 납니까.

<>이원장 =우리나라 국토개발 역사는 매우 짧아요.

국민들의 국토관이 소극적이고 방어적인데다 특히 자연에 대한 보전의식이
매우 강했던데서 그 원인을 찾을수 있습니다.

반면 서양사람들은 자연을 극복과 도전의 대상으로 보고 정복하는데
주력해왔지요.

그래서 서양에서는 수백 수천년에 걸쳐 "국토"가 개발돼 왔으나 우리나라는
지난 30~40년동안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토목기술부터가 많이 뒤떨어지고 도시의 도로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들도
낙후될수 밖에 없지요.

사회간접자본을 비롯한 생활주변 환경시설 등의 확충이 경제성장속도를
도저히 따라갈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삶의 질이 선진국에 비해 그만큼 떨어지는게 당연하지요.

-우리나라 도시가 급속한 근대화과정에서 무계획적이고 마구잡이식으로
개발됐다는 지적이 많은데요.

<>이원장 =지난 반세기동안 너무 빨리 성장해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도시인구는 해방당시 23%에서 지금은 85%에 달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인구밀도, 도시 팽창속도, 서울인구가 전 인구서 차지하는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아요.

예를들어 지금 500만의 인구가 모여 사는 서울 강남의 경우 겨우 20년만에
조성됐습니다.

이는 인류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지요.

단기간에 개발이 된만큼 졸속으로 이뤄지고 하부구조가 튼튼하지 못한
문제점도 많지요.

-수도권 5개 신도시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많습니다.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입장에서 할 말이 많으실것 같은데요.

<>이원장 =5개 신도시 건설자체는 올바른 선택이었습니다.

신도시는 주택문제 해결에 일차적인 목적이 있었으나 수도권의 도시공간
구조를 "서울 집중"에서 다핵적이고 광역적으로 재정비해 나가자는 취지도
있었어요.

문제는 시행과정에서 나타났지요.

졸속적인 추진과정을 거치면서 자재파동 부실공사 문제등이 불거져 나오게
된 것입니다.

또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다 보니 밀도높은 도시가 형성돼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져왔고요.

본래의 신도시 건설 목적이 상당부분 퇴색된게 사실입니다.

-우리의 도시환경 수도권인구 집중 등을 고려할때 앞으로도 신도시 건설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은데요.

<>이원장 =수도권의 주택보급률에 비추어보면 앞으로도 신도시를 개발해야
합니다.

지금 수도권에는 약 380만가구의 주택이 지어져 있습니다.

700만~750만호까지 늘려야 수도권의 주택공급이 완료될 것으로 봅니다.

이를 위해서는 서울을 제외한 기존 도시를 키우거나 신도시를 따로 만들수
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서울중심의 공간구조를 수도권 전체가 포괄된 다핵적인 체제로
재편하는 방식으로 개발돼야 한다는 겁니다.

-지난 여름 청와대와 함께 "도시환경의 세계화 전략 추진방안"을 수립하셨던
걸로 아는데 그 구상의 실제 모습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발표단계에서 무산되긴 했지만요.

<>이원장 =몇번 자문을 해줬습니다.

"계획 없이는 개발없다"는 원칙을 세우고 지금까지의 무계획적인 개발을
지양해 도시를 계획적으로 정비해 나가자는데 기본적인 뜻이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대안으로는 <>자연환경 보전 <>주거지의 고밀도 해소 <>준농림지의
마구잡이식 개발 정비 등이 골자를 이루고 있었지요.

발표단계서 무산된 것은 추진과정에 대한 오해가 있었기 때문이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지금도 도시환경을 계획적으로 정비하자는 근본취지는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국토는 매우 좁지만 그래도 효율적으로 개발할 여지가 많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국토의 효율적 개발을 위해서는 어떤 방안이 연구되고 실천돼야 하는
겁니까.

<>이원장 =우리나라 국토면적은 총 9만9,000여평방km인데 이중에서 도시
용지는 4.5%에 불과합니다.

좁은 땅을 더 좁게 쓰고 있는 셈이지요.

전국토면적의 8~9%까지는 도시로 개발, 활용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1인당 주택지 면적도 44평방m로 국토가 좁다는 일본(118평방m)과
영국(165평방m)에도 훨씬 못미칩니다.

그만큼 개발할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볼수 있습니다.

체계적인 계획에 바탕을 둔 도시개발을 좀 더 적극 추진해 좁은 땅이지만
넓게 쓰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국민은 국토개발 얘기만 나오면 자연파괴로 인식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이원장 =그동안 개발을 해오면서 무책임하게 환경파괴를 일삼아 왔기
때문입니다.

60, 70년대까지만 해도 개발우선주의에 밀려 환경문제를 거론하는 것을
터부시 해온 것이 사실아닙니까.

성장위주로 모든 정책을 펼쳐 왔기 때문에 환경보전에 신경을 덜 쓸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나 앞으로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개발행위 자체를 무조건 환경 파괴행위로 보지 않는 인식 전환도
필요하고요.

다행이 우리나라의 65%가 산지로 구성됐는데 이를 잘 보존하는 것이 1차적인
과제라고 봅니다.

그 다음에 나머지 지역에서 개발을 할때도 환경을 우리 정원속에 끌어
안는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최근 그린벨트에 대한 규제완화가 자주 거론되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관리방안은 무엇입니까.

<>이원장 =그린벨트는 재조정되면 안됩니다.

그린벨트가 다소 불합리하게 관리되고 있긴 하지만 득이 훨씬 더 큽니다.

잘못 손을 대면 그린벨트 자체가 무너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그린벨트를 재조정하기 보다는 현재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불편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문제해결방안을 찾는게 바람직하다고 봐요.

또 국가경쟁력 강화차원에서 토지사용 규제완화도 거론되고 있습니다만
보다 신중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땅이 부족한 나라이기 때문에 함부로 쓰면 곤란해요.

환경 토지규제는 풀기보다 지켜야 할 것이 더 많다고 저는 생각해요.

주택지나 공업단지 개발도 자유입지를 허용해주기 보다는 정부가 계획입지
쪽으로 토지를 더 많이 공급해야 합니다.

또 기업이 자유입지를 원할땐 적절한 수준의 비용을 지불토록 하고, 반면
지자체가 기반시설 조성비용을 부담해서라도 계획입지의 공단입주 조건을
좋게 해 기업을 적극 유인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파트 재건축과 관련 용적률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서울시가 발표한
규제방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원장 =재건축은 별로 좋은 제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분별하게 재건축이 허용되면서 지어진지 20년도 안된 아파트를 헐고
새로 짓겠다고 너도나도 나서고 있습니다.

국가자원의 엄청난 낭비고 폐건축자재로 인한 공해유발도 심각해요.

또 지금 재건축의 문제는 주거지역의 용적률이 지나치게 높다는데 있습니다.

용적률을 낮추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재건축이 논의 되고 있는 지역은 대부분 용적률이 80~90%인데 이것이
300%이상으로 높아지면 주거밀도가 3배이상 높아진다는 얘깁니다.

과연 사람이 사람답게 살수 있는 환경이 갖춰질지 의심스럽고 도시경관상
으로도 바람직스럽지 않아요.

-최근 정치권에서 수도권 자연보전권역을 대폭 해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정부에서도 부분적으로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원장 =서울이 서.남쪽에 치우쳐 기형적으로 개발돼 온 것은 사실입니다.

북쪽으로는 남북문제로, 동쪽으로는 수질보전 문제가 걸려 어쩔수 없이
그랬던 거지요.

그러나 수자원을 그대로 보전하기 위해서는 전체지역을 묶어 관리할 수밖에
다른 방안이 없어요.

자연보전권역을 지정, 관리하고 있는 것은 과거에 철저히 연구하고 검토해서
얻어진 결론입니다.

보다 철저한 수질오염 방지대책이 강구된다면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 자연
보전권역 해제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더 커요.

-국토 균형개발과 관련 기업들의 지방이주및 지방 거점도시 조성이 바람직해
보이는데 기업들을 지방에 유인하는 방안이 있습니까.

<>이원장 =사실 현재로선 뚜렷한 방안이 없읍니다.

그것이 고민입니다.

대기업체 공장들이 많이 지방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오히려 수도권에 몰리는
성향이 높습니다.

지자체들이 적극 나서 대기업 공장들을 유치해야 하는데 현재로선 지자체가
갖고 있는 수단이 별로 없어요.

지자체의 재원이 보다 늘고 제도가 개선되면 나아질 것으로 봅니다.

이와함께 정부도 지방에 SOC투자를 활성화시켜 간접적으로 공장들의 지방
이전을 돕는 것도 필요합니다.

또 기업들도 지난 93년 정부가 지역균형 개발법을 개정, 신설한 복합단지
개발제도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어요.

기업을 지방에 유치하는 취지로 만들었는데 아직 실적이 없습니다.

이 제도는 기업에 공장건설은 물론 배후도시나 생활편의시설까지 건립할수
있는 일종의 도시개발권을 주는 것인데 인식부족으로 활성화되지 않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경부고속철도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일고 있습니다.

고속철도를 건설하는니 고속도로를 건설하는게 낫다는 식입니다.

우리나라 국토환경상 고속철도가 필요하기는 한 것인가요.

<>이원장 =저는 고속철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아 자동차중심 교통체제에만 의존할수는 없어요.

대량운송수단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봅니다.

다만 건설이 지지부진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서울을 옮기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원장 =남북 대치상황만 아니라면 우리도 충분히 검토할수 있다고
봅니다.

신수도를 개발할만한 역량도 있고 개발수요도 능히 감당할수 있어요.

일본도 수도를 옮기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신수도 입지선정인데 통일이 되면 남북이 화합할수 있는 곳을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 정리=유대형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