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미 <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소장 >

"다른 여자 생긴거라면, 혼자있고 싶어서라면,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을
거야. 우리 사랑을 위해..."

이쯤 나오면 어른들은 몰라도 웬만한 초등학생이상의 청소년들은 금방
리듬을 타고 춤도 곁들인다.

영턱스클럽의 "정"이라는 노래다.

이노래는 우리집의 식후소화음악이다.

달리 소화음악이 아니라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아이가 하루에 한번은
이것을 부르며 춤을 추는데 그시간이 대강 저녁식사후 쉴때이기 때문이다.

그시간은 나도 꽤 즐기는 시간이다.

아이들이 하루생활중 일어났던 일을 앞다퉈 보고하는 시간이며 리듬에
맞춰 아이들과 춤을 추는 것은 더없이 즐거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이들 기를 살려주면 눈치빠른 아이들이 요즘 자기들이 산
테이프의 하이라이트를 녹음해 놓은 테이프를 틀며 한동안 더 신바람을 낸다.

"I want your love, 너의 있는 그대로를, 날 지켜줘, 너만 사랑할께"

스크림의 "천사의 질투"를 부르며 XYZ 춤을 춘다.

H.O.T의 노래에 맞춰 선풍기춤, 업 스톤춤, 이현도의 "사자후"와 위풍당당
사자춤이 이어진다.

같이 흥을 내다가 점점 더 막가는 율동과 노래가 금방 내신경을 자극한다.

"너희들 매일 이런 것만 듣니?"

"엄마 아빠 없을때 너희들 쇼프로 본 거아니니?"

"이거 다 어디서 배웠어?"

내 질문공세가 시작된다.

아이들의 변명이 이어진다.

"그런거 요새 모르는 아이가 어디 있어"

"그건 기본이야"

"우리는 하루에 TV를 30분도 안보잖아"

그저 어디가서나 그런것쯤은 억지로 배우지않으려 해도 그냥 된다는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진다.

맞는 말이다.

나는 그아이들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청각환경에 짜증을 내는
것이다.

요즘 환경이야기 한마디 하지않으면 지식인이 아니다.

자연환경이 얼마나 인간에게 중요한가 하는 것이 어디서나 강조된다.

그런데 청각환경이 인간의 정신과 마음에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음악은 어느 예술보다 인간의 마음에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요즘 유행하는 음악에 한창 젖은 아이들은 걷는 모습이 잠시 달라진다.

말하는 스타일이 달라진다.

얼굴 표정이 바뀌고 마음껏 태엽이 풀린다.

한동안 사춘기의 큰 아이와 힙합바지, 반골반바지로 전쟁을 치뤄야 했던
나로서는 그냥 방관만 할 수는 없었다.

청소년의 또래 문화는 필요하다.

다만 그에 못지 않게 균형감을 갖기 위한 다양한 청각환경이 인간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진리도 잊어서는 안되겠다는 이야기다.

인간은 도시의 편리함을 필요로 하기도 하지만 자연 그대로의 삶을 맛보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환경 만큼이나 청각환경의 다양함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시청률, 청취율 안전관리 차원에서 가장 용이한 감각과 율동의 음악,
상대적으로 마취적이고 도피적이며 문제의식을 둔화시키는 것이 주로 전파를
타고 있는 우리의 청각환경은 그런 점에서 건강하지 못하고 너무 편향되어
있다.

청각환경의 제공자가 그것을 못해주면 할 수 없이 나부터 그러한 방향으로
실천을 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냥 방관할 수 만은 없다고 주장한 나의 조그만 실천은 밥상의 반찬을
육체의 영양을 위해 매일 바꾸듯이 음악을 다양하게 바꾸는 것이다.

인류가 낳은 전세계의 음악을 구하는 것은 이제 그리 어렵지 않다.

시장에 가서 찬거리를 고르는 것보다 음반시장에 가서 장을 보는 것이
휠씬 재미있다.

세계 각국의 음악도 듣고, 서양의 클래식도 듣고, 한국의 민요도 듣는다.

가만히 놔둬도 패스트 푸드에 끌리듯이 유행음악을 충분히 섭취하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음악의 식탁을 차려주어야 하는 것은 우리 어른들의 몫이
아닐까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7일자).